6천 킬로미터. 60대인 저자가 유럽 8개국에서 100일 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은 거리다. 잘나가던 대기업 임원 자리를 버리고 자전거 여행가로 변신한 저자가 <아메리카 로드>와 <재팬 로드>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 인문여행기를 펴냈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구석구석에서 마주한 역사와 예술, 추억으로 더 풍성해졌다.
저자의 자전거 여행은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자전거로 누빈 곳곳들이 저자의 문화적 소양을 만나 화려한 날개를 펴는 모양새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체에서마저 생생하고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것도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김훈의 글이 부드럽고 쌉싸름한 전통 소주라면 저자의 글은 시원한 맥주다. 유럽의 풍경이 맥주 거품처럼 가볍게 들어왔다가 개인적인 추억과 인문학이 만날 때는 톡 쏘는 목넘김 같달까. 풍경에 빠지고 추억에 취하는 맛이 있다.
저자는 역사의 흔적을 좇아 페달을 밟는다. 영화 <페드라>에서 새어머니의 유혹에 빠졌던 앤서니 퍼킨스가 “죽어도 좋아!” 외치며 스포츠카를 몰던 절승(絶勝)의 해변길을 달려본다. <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진 문호 카잔차키스의 흔적을 찾아 크레타 섬을 달린다. 프랑스에서는 청소년기에 가슴 졸이며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소설 <아를의 여인>이나 <별>을 떠올리며 프로방스의 시골길을 달리고, 스위스에서는 한니발이 코끼리로 넘었던 알프스를 자전거로 직접 넘어보기도 한다.
유럽에서 우리의 것과도 조우한다. 주옥 같은 글을 남기고 불꽃처럼 살다 간 수필가 전혜린이 레몬빛 가스등 아래 우수에 젖어 거닐던 독일 뮌헨의 슈바빙 거리를 배회하고, 베를린 장벽을 더듬으며 한반도의 허리를 묶어버린 녹슨 철책을 떠올린다. 주변의 공기와 사유의 끝에 있는 성찰까지 끌어온 만찬과 같은 글에 매료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의 여행은 종착지 없는 인생로드로 귀결된다. “내 ‘집’으로 돌아와 누우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한 번뿐인 인생을 잘사는 것일까. 대책 없이 늘어난 장수의 시대에. ‘좁은 철망 속에서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는 광대한 벌판을 달리는 것으로 인식한다.’ 책을 읽다 이 한 줄에 충격을 받아 25년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어릴 적 꿈을 좇아 바로 길을 나섰다.”
책을 덮고 나면 그가 경험한 여행만큼이나 꿈같고 아쉽기만 하다. “몽환적 여로를 달리던 지난 일주일이란 시간이 마치 활의 신 아폴로의 쏜살처럼 지나갔다.” 알면 더 재밌다. ‘관광’을 넘어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글·박지현 기자 2014.06.30
단신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알프리트 슈미츠 지음 | 송소민 옮김
서해문집 | 1만4,900원
인류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위대한 발명 50가지를 선정했다. 그 발명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발명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등을 짚어본다. 도구와 불, 수학에서 시작해 화장실과 달력, 천문학을 거쳐 컨베이어벨트와 대체에너지, 내비게이션에 이르기까지 인류 진보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채정호 지음 | 생각속의집 | 1만2,800원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애도심리학이다.
상실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아픔으로 다가온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상실의 의미, 상처, 치유, 승화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애도의 핵심은 결국 힘든 것을 피하지 않고 겪어냄으로써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힘을 얻는 데 있다고 말하며, 이를 잘 극복하면 새로운 삶의 힘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