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고택은 종택이다. 오랜 세월 이어 내려온 사람들의 역사다. 족보란 옛 자취인 것 같지만 또 쉬이 무시할 수만은 없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저 낡은 전통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강원도 지방은 고택이 많지 않다. 강릉의 선교장이나 영월의 조견당, 우구정가옥 등이 알려져 있다. 그 숫자는 여느 지역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규모도 선교장 정도가 전국에서 손꼽는다. 늘 정치의 변방이었던 까닭도 있다. 또한 한국전쟁을 지나며 많은 수의 한옥이 허물어졌다. 천혜의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묵어가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층 귀하다.
춘천 역시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의 고택이 사라지고 현재는 세 곳의 전통 가옥이 남아 있다. 100년 남짓한 고택들이다. 첫번째는 민성기 가옥으로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묘막이다. 나머지 두 가옥은 한 마을에 있으며 신동면 정족리에 있는 최재근 가옥과 김정은 가옥이다. 정족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정족천이 흐르고 주변을 얕은 골짜기가 둘러싼다. 지형이 마치 솥다리처럼 생겼다 해 솟바리라 부르던 데서 정족(鼎足)이 유래했다. 오가는 버스는 드물고 남춘천역에서 가까운데 버스에서 내려 20분 남짓을 걸어 이동한다. 오히려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경춘선과 나란한 김유정로에서 샛길로 접어들자 곧 마을회관을 지난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다. 200m 정도 직진하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5호인 최재근 전통 가옥이 있다. 영서지방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이다. 김정은 가옥보다 앞선 1917년에 지어졌다.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를 가진 ‘ㅁ’자형 한옥이다. 안채에는 대청의 왼쪽에 윗방과 안방 등이, 오른쪽에 건넌방이 있다. 사랑채는 좌우에 방과 외양간, 방과 부엌 등을 놓았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8호 김정은 가옥은 삼거리 오른쪽 끝자락이다. 약 70미터 거리다. 실개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다가선다. 가옥의 주변으로는 전원풍의 주택이 들고난다. 한적하고 고요한 마을이다. 뒤쪽으로는 야트막한 야산이다. 김정은 가옥을 호위한다. 그리 높은 산세나 거센 강줄기를 자랑하지 않지만 소박하나마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이 가운데 김정은 가옥만이 한옥 숙박으로 문을 연다. 춘천시 한옥체험업소 1호다. 첫 지정 이래 지금까지 춘천에서 유일하다.
한때는 5대가 함께 살던 솥바리 큰 기와집
김정은 가옥의 주인장 구자완(46)씨의 말을 빌리면 김정은 가옥과 최재근 가옥은 형제 사이였다. 최재근 가옥은 전 주인 김정은씨의 고조부가 살던 집이다. 증조부 김영집씨는 작은아들이었다. 최재근 가옥에서 분가해 지금 위치의 초가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 장사를 시작했고 일대의 곡식을 사서 뗏목을 타고 서울에 가 팔았다. 그렇게 모은 재산으로 화천의 천석꾼이 됐다.
기와집으로 지은 김정은 가옥은 화천에 있던 집을 이전했다. 그 작업은 최재근 가옥을 지은 목수가 맡았다. 김정은 가옥에는 한때는 5대가 같이 살았는데 식구만 해도 20명이 넘는 대가족이었다. 솥바리 큰 기와집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집 앞에 서니 가장 먼저 삼문의 형식을 갖춘 대문이 맞이한다. 주변으로는 담을 곱게 둘렀다. 오른쪽에는 행랑 한 칸이 딸렸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길게 늘어선 사랑채가 귀한 보물인 양 안채를 가린다. 대신 장방형의 사랑마당이 쉼을 권한다. 슬그머니 걸음을 낸다. 널찍하지는 않다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핀다. 청단풍나무 두 그루가 있어 방문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김정은 가옥이 지어졌을 때부터 있었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다만 현 주인인 구자완(46)씨 부부가 살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켰다.
나무는 어느새 웃자라 사랑채 지붕 위로 그늘을 내린다. 가을에 붉은 단풍이 들면 더 아름답겠다만 오뉴월의 푸름도 그 못지않다. 더위를 막아서는 시원스러움은 붉은 빛보다 푸른 빛이 앞선다. 서쪽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깐이나마 그 푸름을 향유한다. 간간한 바람에 잎들이 몸을 떤다. 시선을 끌어 제 존재를 항변한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가지 틈새로 비춘다. 한옥이 주는 맛은 역시 멈춰서 바라볼 때 커진다.
못내 아쉬운 미련을 떨치고는 안채로 이동한다. 여인들의 공간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청마루 앞으로 약 3미터가량 뻗어 나온 차양이다. 안채의 강렬한 첫인상이다. 한옥의 처마 밖으로 차양을 낸 구조는 강원도에서 강릉의 선교장과 김정은 가옥이 유일하다. 그 풍광이 기존의 한옥과는 조금 다른 멋과 운치를 연출한다. 가만히 비 내리는 날의 풍경을 그린다. 후두두 대는 빗소리를 머리에 이고 혼자만의 애상에 빠져들어도 좋으리. 볕 좋은 날에는 생활이 스미려나. 그늘에서 소일의 즐거움을 누리겠다. 안마당은 그리 넓지는 않다. 서쪽으로는 담장을 둘렀다. 그 곁으로 철쭉이 피어 번진다. 사랑채 끝자락에는 아담한 굴뚝이 아궁이 바깥으로 팔을 뻗는다. 누구도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차양 안쪽의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건넌방이, 동쪽에는 윗방과 안방, 부엌이 차례로 자리한다. 대청마루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였다. 건너편에는 다듬잇돌 위에 다듬잇방망이가 가지런하다. 안주인장의 손길은 시간을 가로질러 과거와 현재를 오가겠다.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려나. 건넌방에 앉아 차한잔의 호사를 누린다.
김정은 가옥은 이름 난 종택은 아니다. 사대부나 권문세가도 아니었다. 대대손손 대를 이어 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고택에 머무는 사람은 한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게 마련이다. 현 소유주 구씨 가족은 서울에 살다 맑은 공기를 찾아 춘천으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아파트에 살았다. 춘천에 다른 연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부부는 예전부터 한옥을 좋아해 한옥 나들이를 자주 다녔다.
한옥에 살고 싶었지만 한옥에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김정은 가옥은 어느 봄날 우연히 찾았다.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마음이 편안했다. 쪽마루에 앉아 햇살을 맞이하는데 그 기억이 좀체 잊히지 않았다. 마치 ‘가옥과 사랑에 빠졌다’고 할까.
그 인연으로 가옥에 들어왔다.
언제든 한옥의 온기 느낄 수 있는 카페도 운영
지난 2004년에 이사 왔으니 어느새 한옥살이도 10년이다. 주변에서는 1년도 못 살 거라 했지만 여전히 한옥의 재미를 찾아 즐기며 산다. 단순히 머물러 누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집이 가진 역사에 대한 관심의 끈도 놓지 않는다. 사랑채에 붙은 부엌은 옛날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다. 아궁이를 살리고 다시 불을 지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전의 집주인들에게 옛 사진이나 자료를 얻어 고택의 흔적을 차곡차곡 쌓아 남기고 싶다. 그 집을 살아간 사람들의 핏줄이 다르더라도 고택의 역사는 대를 이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믿는다.
몇 해 전부터는 한옥 체험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고택에는 혼자 누리기에 아까운 것이 너무도 많았다. 하룻밤을 묵어가며 쉴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 때나 편히 찾아 한옥의 참맛을 체험할 수 있다. 그 방편의 하나가 한옥 카페다. 김정은 가옥은 평상시에도 카페 형식으로 내방객을 맞는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안주인이 손수 만든 우리 먹을거리를 낸다. 잠깐의 휴식이지만 한옥의 온기를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차 한 잔의 여유에 기대 한옥의 마당을 훑고 가는 햇볕과 그림자의 기울기를 따라 넋을 잃고 마음을 놓아도 좋으리라.
고택도 결국 사람이 사는 집이다. 오랜 시간 비바람을 견뎌내 시간의 나이테가 묻어나는 집은, 그 너그러움으로 다시 사람을 품는다.
글과 사진·박상준(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