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징그러운 여름이었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도 맹렬한데 벌써 이런 과거 시제를 써도 되는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말복이 지났고 처서도 지났으니 늦은 밤과 이른 아침마다 찾아오는 선선한 바람에 기대어 용기를 낸다.
사람도 고생이고 짐승도 고생이고 죄다 고생이 많았다. 1907년 관측 이래 111년 만에 온 대단한 폭염이라는데, 왜 안 그렇겠는가. 열대야 일수로는 신기록을 세웠다니, 24시간 쉴 새 없이 볶아대는 찜통더위에 동식물을 막론하고 온 생명이 밤에도 쉬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 식물까지 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아마 온 세상이 더위에 신음하는 비명으로 가득 찼을 게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장바구니를 보고 알았다. 어느 날에는 오이가 열십(十)자로 속이 비어 이상스럽더니, 다른 날에는 수박 속이 온통 피멍이 들었고, 얼마 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사온 토마토를 갈라보니 과육이 반밖에 차 있지 않아 황당했다. ‘아, 식물도 더워서 제정신이 아니구나. 사람만 고생인 게 아니다’ 싶었다. 뻥과라느니, 피수박이라느니, 모자이크병이라느니 병의 세부적인 작동기제는 각기 다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밤에도 식지 않는 폭염이다. 밤에도 열기가 흘러넘쳐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속살이 여물지 못한 채로 밖으로만 기운이 뻗친 일명 ‘뻥과’가 생산되는 것이다. 아내는 텅 빈 토마토 속을 내게 보이며 혀를 찼다.
“이거 봐, 이거 봐…. 이래서 농작물이 햇빛만 먹고사는 게 아니라고 했나 봐. 밤의 서늘한 달빛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나는 그냥 시적인 수사(修辭)인 줄만 알았거든. 근데 생명력을 꺾는 한기(寒氣)가 되레 생명력을 보존하게 해준다니, 놀랍지 않아?”
여름은 밖으로 맹렬하게 뻗어나갈 줄밖에 모르는 생명력이다. 그 생명력을 다시 안으로 꺾어서 거둬주지 않으면 허무하게 공기 중에 소진되고 말 것이다. 마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지는 꽃처럼. 속이 텅 빈 쭉정이처럼. 그래서 무슨 일이든 제대로 되려면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가 공존해야 한다고 옛 어르신들이 말씀하셨나 보다.
아내는 그냥 먹기는 맛이 없으니, 토마토에 갖은 재료를 넣고 졸여서 소스를 만들겠다고 했다. 밤새 가스불을 켰다 껐다 반복하며 소스를 졸였다. 지켜보던 나는 꼭 그렇게 번잡하게 해야 하느냐, 그냥 약한 불로 오래 졸이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내의 현답(賢答)은 이랬다.
“요리에서 진짜 중요한 일은 불을 껐을 때 일어나거든. 재료가 응축되면서 맛이 배는 과정이야. 오래 약한 불로 졸여도 되지만, 이게 훨씬 효율적이지.”
열기는 재료의 맛 성분을 용출시키고, 한기는 뿜어져 나온 맛 성분을 다시 재료에 스미게 한다. 과연 음양의 이치는 여염집 주방이라고 피해가는 법이 없다. 음양의 이치를 무쇠 웍을 통해 실험하고 사유하고 있었다니, 아내야말로 음양론의 대가가 아닌가?
졸여진 토마토소스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 가스불이 꺼지고, 소스는 밤새 차게 식으며 농밀해져갈 것이다. 속으로 단단하게 맛이 차오를 시간이다.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