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운명일까? 남자와 처음 손을 잡으면서 또는 입을 맞추면서, 사방에 별이 떠오르고 귀에는 종소리가 들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감촉을 처음 느꼈을 때, 나는 초등학생 꼬맹이였고 맞은편에는 연신 코를 후비는 남동생이 앉아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화투를 치는 중이었다. 나는 느닷없이 조금 외롭고 숙연해졌지만 고스톱을 치다 말고 이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어려도 그만한 사리분별은 있는 것이다.
그해 겨울은 우리 남매가 민화투에서 고스톱의 세계로 막 진입한 때였다. 그 시절 다른 어르신들처럼 내 부모님도 화투라면 칠색 팔색 하셨지만, 명절에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서 사촌 언니 오빠들에게 배운 것이다. 고스톱의 신세계는 황홀했다. 흑백TV에서 컬러TV로 넘어간 것처럼 자극적인 맛이 총천연색으로 넘쳤다.
우리는 겨울방학 내내 노상 고스톱을 쳤다. 선수는 달랑 둘뿐, 대안이 없었다. 엄마 눈치 봐가며 치는 마당에 친구까지 불러 ‘하우스’를 차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우리 둘 다 초등학생임을 감안해달라). 자연히 패가 나쁘다고 죽을 수도 없고, 광이나 팔면서 쉴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슬금슬금 어린애 눈에도 어떤 패턴 같은 게 들어왔다.
먼저 동생과 나의 승률은 평균 4대 6. 나쁘지 않다. 아니, 훌륭하다. 한두 시간 넘게 쳐보면 매번 근소하게라도 내가 더 많이 이기는 게 확인되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지만) 돈이다. 승률은 내가 더 높은데 돈은 녀석이 더 챙긴다. 아니, 왜 이런 일이 생기나? 나는 이겨봤자 ‘고’를 한두 번 부르고 마는데, 동생은 대여섯 번씩도 부르니 따는 돈의 격차가 큰 것이다. 즉 나는 작게 자주 이기고, 동생은 한 번을 이겨도 크게 이겼다.
아아, 나는 좌절했다. 학교에서 배운 화살 맞은 이순신 장군의 심정으로, 적에게(그러니까 동생에게) 티를 안 내려고 무진장 애썼지만 속으로는 샘이 나서 데굴데굴 굴렀다. 세상의 규칙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했다. 더 많이 이기는 게 장땡 아닌가? 왜 얼마나 이겼는지를 따지나? 올림픽을 보라. 월드컵을 보라. 10대 0으로 이기는 거나 1대 0으로 이기는 거나 똑같다. 메달을 10개 주지는 않더라. 그런데 왜 고스톱만? 나는 부당하다는 생각에 잠 못 이뤘다. 하지만 아무리 몇 날 며칠 분노에 떨어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자, 마침내 그만두었다. 대신에 동생처럼 나도 ‘고’를 여러 번 부르기로 했다. 그까짓 것 나라고 못할 거 같아, 그러면서.
그런데 막상 해보니 ‘고’를 부르는 게 만만치 않다. 내가 지레 겁먹고 못 부르는 줄 알았는데, 단순히 기분 문제가 아니다. 상대가 날 것 같은데 어떻게 고를 부르나. 내가 이기는 판은 딱 사이즈가 3점짜리로 이미 세팅된 경우가 많았다. 동생 흉내를 내겠다고 작정하니 다른 것도 보였다. 녀석은 게임 초장부터 무작정 활기에 넘쳤다. 이번 판은 이길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기대로 바보같이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딴에는 심각하게 패를 ‘쪼고’ 있는데, 성가실 때도 있었다. 아아, 지금 생각하니 내가 거기서부터 말렸구나 싶어서 때늦은 짜증이 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게 다 우주의 기운을 끌어오는 것이었나 보다. 지난 설에 가족들이 모여 윷놀이를 했는데, 며느리 팀을 연전연승으로 이끈 명장(名將) 시어머니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비결을 알려줄까? 기운을 크게 쓰는 사람이 이긴단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종종 그때 생각을 한다. 개울 속 송사리가 꼬리를 탁 치고 달아날 때처럼, 섬세하면서도 예리하게 손끝을 스쳤던 운명의 감촉. 아무리 해봐도 3점 나는 고스톱, 그게 나인가. 처음에는 그 생각이 서운하고 속상해서 아무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전략분석관처럼 그 생각을 실마리 삼아 나를 관찰했다.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나인가.
인생은 승패의 문제일까, 따는 돈의 문제일까? 내가 살아본 인생은 둘 다 중요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게임의 룰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풀어가는 힘이다. 그게 주도권이다. 내가 가슴 먹먹한 운명론에 치이는 동안 발 뻗고 잤을 바보 동생에게 배워야 할 유일한 교훈은 그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기세가 중요하다는 것. 고강한 무림 고수들의 초식도 이 말과 함께 시작하지 않나. “기세!” 물론 그때의 기세는 기세(氣勢)가 아니라 기세(起勢)지만, 따지지 마라. 복 나간다(농담이다). 그게 그거다. 요는, 기세가 중요하며 우리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건 기세뿐이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봄, 기세의 시간이다.
김진경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