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다. 지난겨울 일어난 촛불시민혁명은 국정농단으로 정당성을 상실한 박근혜정부의 퇴진을 요구한 동시에 국민이 더 이상 통치의 대상이 아닌 나라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국민의 시대’를 요청한 혁명이었다. 국민의 시대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이 함의하는 ‘국민주권 시대’를 지칭한다. 이러한 국민주권 시대의 정부가 곧 문재인정부다.
문재인정부가 내건 국가비전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다. 여기서 ‘국민의 나라’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했던 촛불민주주의의 정신을 계승하고, 국민주권의 헌법 정신을 국정운영의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정부의 실현을 의미한다. 국민의 나라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하고 국민 개개인이 국정 전 과정에 참여해 정책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국정운영을 변화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두 번째 목표는 권력자 한 사람의 정부, 엘리트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정부, 국민 주도의 정치를 지향하며 ‘두 국민’이 아닌 ‘한 국민’을 위한 협치와 통합의 정치를 모색하는 데 있다.
▶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7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정과제 보고 대회를 열었다. ⓒ청와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년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권력이 어떻게 행사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유화된 국가권력과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 불공정한 기회에 대한 불만, 격차 확대로 인한 희망의 상실, 이로 인한 개인과 사회 모두의 불안은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의 현주소였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국민들은 불만을 가졌고 불안을 느꼈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공정한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의 소망이자 시대적 가치인 셈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론>에서 ‘사상체계의 제1 덕목이 진리라면,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은 정의’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정의로운 제도가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러한 정의로운 제도의 설계 및 운영이 정치와 정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특권과 반칙을 일소하고, 원칙과 상식을 존중하며,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고,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는 목표를 갖는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문재인정부의 핵심 가치이자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이룰 수 있는 국정철학의 요체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의 바탕 위에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5대 국정목표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다. 각각 정치·행정, 경제, 사회·문화, 지역, 국제관계를 염두에 둔 국정목표다. 5대 국정목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는 제도와 일상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정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의 특권을 내려놓고 국가권력의 사유화로 말미암아 붕괴된 국정운영체제를 개편하고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권력자 한 사람의 정부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정부를 추구한다. 동시에 국민과 소통하고 이를 통해 통합을 모색하는 열린 광장의 대통령, ‘광화문 대통령’을 구현하고자 한다.
‘더불어 잘사는 경제’는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를 지향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더불어 잘사는 경제’의 핵심 원리다. 가계 소득이 늘면 소비가 살아나고 투자와 생산이 증가하는 국민경제의 선순환 복원을 추구한다. 특히 일자리가 성장을 촉진하는 최고의 복지라는 점에 주목해 일자리 창출을 경제의 핵심 과제로 삼는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과학기술 발전과 미래 성장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역동적인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 창의적 벤처기업과 혁신적 창업자를 육성하고자 한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며 사회 구성원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복지·보육·교육·안전·환경 영역에서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 제고를 모색한다. 노동 존중과 성평등을 포함해 사회 각 영역에서 차별 없는 공정사회를 추구하는 동시에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을 탈피해 국민 모두가 더불어 공존하는 질 높은 사회통합을 실현하고자 한다. 여기에 더하여 지식정보사회 발전에 발 빠르게 대응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창의성이 발휘되며 국민 모두의 행복이 실현되는 문화국가를 추구한다.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은 문재인정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국정목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국가목표다. 이를 위해 추진해야 할 일차적인 과제는 자치분권과 균형 발전이다. 자치분권을 이루기 위해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과 지방재정의 확충을 통해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주민자치 확대를 통해 지역 현장의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해 자립적 성장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중앙 대 지방, 지방 대 지방 간의 경제·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자 한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우리나라가 놓인 대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국제관계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정목표다. 이를 위해선 먼저 국토를 지키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강력하고 유능한 안보와 국방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제재부터 협상까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핵 없는 한반도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추진해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를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당당한 국제협력 외교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가비전의 다른 이름은 시대정신이다. 앞선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에서 볼 수 있듯 시대정신으로서의 국가비전은 국민의 삶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 자신에게 부여된 의미를 완성한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나라’다. 이 국민의 나라에서 국민 개개인이 인간답게, 그리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구현은 문재인정부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시대적 소명일 것이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국가비전 및 프레임 TF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