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음력 8월 20일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게 시해됐다. 왕비가 피살되자 불안해진 고종은 한밤중에 경복궁을 빠져나와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일본의 입김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조정에 친일 내각을 만들어 단발령 같은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에 반발한 백성들이 들고일어났다. 전국에서 의병 봉기가 일어나 중앙의 친위대까지 의병 진압에 나섰다. 수도 경비에 공백이 생기자 고종은 일본의 눈을 피해 1896년 2월 11일 덕수궁 후문으로 궁을 빠져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것이 ‘아관파천’이다. 고종은 1897년 2월 20일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올 때까지 약 1년여를 러시아공사관에서 생활했다.
▶ 정동공원에 있는 구 러시아공사관 ⓒC영상미디어
고종이 구 러시아공사관으로 향했던 ‘고종의 길’은 서울 중구에 있는 덕수궁 서북쪽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건너편에서 정동공원,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지는 총 120m 길이다. 문화재청은 이 길을 3년여 동안 복원한 후 8월 한 달간 시범 공개했다. 정식 개방은 10월이다.
▶ ‘고종의 길’은 서울 중구에 있는 덕수궁 서북쪽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건너편에서 정동공원, 구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어지는 총 120m 길이다. ⓒC영상미디어
고종이 러시아로 향했던 길은 덕수궁 안에 있던 선원전 터가 중심이다. 선원전은 조선 왕조의 어진과 신주를 모셨던 장소다. 선원전 터는 고종의 길 복원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홀로 비어 있는 땅이었다. 아관파천 당시만 해도 자리를 지키던 선원전은 1900년 화재가 발생하면서 현재 정동 1~8번지인 북쪽 수어청(守禦廳) 자리로 옮겼다.
원래 선원전이 있던 곳은 1920년 덕수궁이 축소되면서 경기여고와 주한미국대사관저 등의 부지로 사용됐다. 이후 1986년 서울시와 미국대사관은 을지로에 있는 미국문화원과 경기여고가 있는 부지를 교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1988년 경기여고가 서울 강남구 개포동으로 자리를 옮기자 미국은 이 자리에 대사관 직원들의 숙소를 지으려 했지만 건축법 때문에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후 이 부지가 덕수궁 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시민단체에서 대사관 기숙사 건립 반대운동을 펼쳤다. 결국 2011년 한미정부 간 협의에 따라 토지 교환이 이뤄지면서 덕수궁 터였던 선원전 부지가 우리나라로 귀속됐다. 고종의 길은 선원전 부지와 미국공사관 소유의 땅 경계에 있다.
고종의 길을 방문하려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교회를 지나 정동으로 향해야 한다. 고종이 밟았던 길 그대로를 따라가려면 지난해 8월 개방된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쪽 돌담길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다. 각종 사료에 따르면 고종은 덕수궁 북쪽에 있는 회극문(會極門)을 나와서 영국대사관 후문쯤에 있었던 문을 빠져나와 선원전 영역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근대사 비극의 서막을 연 역사 현장
고종의 길에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선원전 터를 복원하는 공사현장이 눈에 띈다. 그 안에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은 건물이다. 해방 후에는 미국대사관이 부대사의 숙소로 썼다. 사택은 고종의 길을 임시 개방하는 8월에만 볼 수 있다. 내년부터 선원전 영역을 발굴 조사하기 위해 올해 안에 철거할 예정이다. 사택이 있는 동안만 볼 수 있는 과거의 흔적과 역사의 숨결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방문을 서둘러야 한다.
▶ 1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헨리 잭슨이 한국을 찾은 1896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미국공사관(현미국대사관저) 북쪽에서 러시아공사관 동쪽을 바라본 이 장면에는 덕수궁 돌담길이 보인다. 2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머물던 방 ⓒ조선DB
사택을 지나면 덕수궁 돌담 같은 담장이 이어진다. 오르막으로 이어진 길 끝에는 정동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종의 길을 나와 오른편으로 옛 러시아공사관이 보인다. 고종이 떠났던 길의 종착지다.
아관파천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조선의 국력 손상으로 이어졌다. 일본 세력을 누르기 위해 러시아의 힘에 기댄 지도자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고종은 독립협회를 비롯한 여론의 비난에 못 이겨 파천 1년 만인 1897년 2월 20일 덕수궁으로 환궁했다. 같은 해 10월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세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우리 근대사 비극의 서막을 연 역사 현장인 ‘고종의 길’은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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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