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육지에서 섬을 바라보면 외로워 보인다. 하지만 섬에서 육지를 바라볼 때는 정반대다. 한발 떨어져 일상을 바라보는, 혹은 내가 속한 세상을 타인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느낌이 든다. 물리적 거리감만큼이나 일상과의 거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해변을 따라 걸으며 머리를 식히고 넓은 바다에 복잡한 마음을 흘려보내다 보면 삶의 큰 쉼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올여름 휴가지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 5곳의 섬을 눈여겨보자. 행정안전부는 ▲대·소이작도(인천 옹진군) ▲삽시도(충남 보령시) ▲말도·명도·방축도(전북 군산시) ▲도초도(전남 신안군) ▲울릉도(경북 울릉군)를 여름철 휴가 즐기기 좋은 섬으로 선정했다. 여름 섬에 선정된 5곳의 여행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누리집(korean.visitkorea.or.kr) 또는 애플리케이션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인천 옹진군
대·소이작도
조선 초까지 해적이 은거했다는 섬. 그 옛날엔 해적이 숨었다지만 요즘은 도시를 떠나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대·소이작도는 200m 거리로 대이작도와 소이작도로 나눠져 있는 영락없는 형제 섬이다. 과거 대이작은 소이작으로, 소이작은 대이작으로 불렸으나 실제 면적은 소이작이 좀 더 넓어 서로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대·소이작도의 섬 높이는 190m가 채 안 된다. 산에도 쉽게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맑은 공기와 푸른 바다 주변으로 아름다운 해변과 트레킹 코스가 있어 섬 산을 오르며 구경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맑은 날이면 산 정상에서 저 멀리 덕적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평소 바다 밑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만 드러나는 널따란 모래사장 ‘풀등’은 대·소이작도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바닷속 모래톱이 썰물 때면 하루 두 번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소이작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강암질 혼성암이 있다. 암령이 25억 1000만 년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이 바위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품었을지 그 웅장함이 전해진다.
대·소이작도의 모든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가 고와 어린아이도 편안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갯바위가 많아 낚시로도 유명하다. 인천 옹진군에 위치해 있어 수도권에서 방문하기에도 부담 없다.
2. 충남 보령시
삽시도
이름부터 특이하다. 충남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삽시도는 하늘에서 바라보면 화살을 끼운 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달리 보면 가오리가 양쪽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삽시도는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바닷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물망터다. 물망터 바위틈에서 콸콸 솟아오르는 생수는 삽시도만의 명물이다. 바위틈에 고인 물이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이곳 사람들은 약수로 여긴다. 칠월 칠석날 물망터 샘물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면삽지 역시 보물로 손색없다. 조수간만에 의해 삽시도와 연결되는 섬 속의 섬으로 산길따라 내려가면 덩그러니 솟은 면삽지를 마주하게 된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견디며 만들어진 절벽과 해안 동굴이 장관을 이룬다. 해수욕장 주변으로는 해송 숲이 빽빽하다. 황금빛을 띠는 소나무 황금곰솔은 변종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인데 엽록소가 없거나 적어서 생긴 모양새다.
삽시도 거멀너머·수루미·밤섬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저녁에는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트레킹하는 일정은 어떨까? 삽시도에 마음을 뺏기는 건 삽시간이다.
3. 전북 군산시
말도·명도·방축도
말도·명도·방축도는 여러 섬이 가지는 특색을 한 번에 구경하기 좋다. 섬 간 연결돼 있어 군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방축도는 고군산군도 끝자락에 위치해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동백숲길과 해변산책로가 어우러져 걷기 좋다. 출렁다리가 방축도와 무인섬 광대도를 연결하는데 섬과 섬을 잇는 다리 좌우로 바다가 펼쳐진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이 지역 명물인 독립문바위와 수려한 경관을 마주하게 된다. 독립문바위는 오랜 기간 풍화작용으로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산물이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과거에는 밧줄을 타고 내려가 구경하기도 했다.
방축도를 지나면 명도가 나온다. 해와 달이 합쳐진 듯 물이 맑아 명도라 부르게 됐다. 군도를 이루는 수십 개의 섬 중 물이 가장 맑고 깨끗한 섬이다. 해풍을 견디고 자란 약초가 많은 명도는 약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명도에서 더 나아가면 말도가 있다. 말도는 고군산군도 맨 끝에 위치해 있다. 끝(唜)을 의미하는 말 그대로 ‘끝섬’이란 의미다. 말도의 천년송과 천연기념물 습곡지형 등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고스란히 암시한다. 말도에는 전북에서 두 곳뿐인 유인등대도 있다.
말도·명도·방축도는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K-관광섬’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곳이다. 말도·명도·방축도(유인섬)와 보농도·광대도(무인섬) 5개 섬을 연결하는 총길이 1278m의 해상인도교가 2024년 개통할 예정이다.
4. 전남 신안군
도초도
영화 <자산어보>의 촬영지로 알려진 도초도. 영화 속에서 정약전(설경구 분)이 유배 가 머물면서 물고기를 연구하던 곳이다. 해산물이 풍부하단 의미도 된다. 도초도는 우리나라에서 13번째로 큰 섬이다. 토지 역시 넓고 땅이 비옥해 농사짓기도 적합하다. 육지와 바다의 먹거리가 방문객을 사로잡는데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이나 간척지에서 재배한 시금치는 도초도의 인기 상품이다.
도초도는 수목이 무성해 붙은 이름이다. 여름철에도 형형색색 꽃이 만개해 바다와 꽃이 이루는 색감은 황홀함을 선사한다. 수국이 필 무렵에는 100여 종의 수국을 볼 수 있으며 마을 전체에 팽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섬의 서쪽 해안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할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해변 한쪽 끝에 위치해 대문과 같이 보이는 문바위 주위로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모래사장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펼쳐진 시목해수욕장은 넓고 물이 깨끗해 가족 단위 피서를 즐기기 좋다. ‘시목’은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며 주변에 감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도초도에는 옛 초가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을 골목도 옛 돌담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통 건축양식이 잘 보존돼 있어 도초도를 천천히 걷다 보면 마치 시간 이동을 한 기분이 든다.
5. 경북 울릉군
울릉도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섬, 울릉도다. 울릉읍, 서면, 북면으로 나눠진 울릉도는 화산섬이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탓에 화산암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화구가 함몰된 나리분지와 알봉분지 역시 화산섬을 즐기는 묘미다. 부속도서로 관음도, 죽도, 독도 등이 있다. K-관광섬 사업 대상지로 8월 8일에는 ‘제4회 섬의 날’ 행사도 개최될 예정이다.
울릉도의 매력을 짧은 글에 모두 담을 순 없지만 기암 3대 비경만은 반드시 눈에 담자. 제1경은 삼선암이다. 원래 울릉도에 붙어 있던 암석이 시간이 지나며 떨어져 나왔다고 한다. 세 명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가 돌아갈 시간을 놓쳐 삼선암이 됐다는 전설도 있다. 제2경 관음쌍굴은 파도의 침식에 의해 생긴 높이 14m, 두 개의 해식동굴이다. 암초 주변으로 대형 갈조류, 해조류 등 해양생물이 어우러져 수중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관음쌍굴을 보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관음도에 돌아야 하는데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사람이 살지 않는 관음도는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 만점이다. 코끼리바위는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생겨 흡사 코를 바다에 담그고 물을 마시는 코끼리 형상을 한 주상절리로 제3경에 속한다. 제대로 감상하려면 바다로 포인트를 옮기는 게 좋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울릉도.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스킨스쿠버를 즐길 수 있으며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해변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특히 도동과 저동을 잇는 해안 산책길은 강렬한 경험을 선호하는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다. 강한 파도가 산책길까지 미치는 데다 나선형 계단과 동굴까지 지나야 해 모험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울릉군 특산물인 오징어와 호박엿도 놓쳐서는 안 된다.
글 선수현 기자·사진 C영상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