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걷기 좋은 명품숲길 50선’ 선정
산림청이 국토녹화 50주년을 맞아 ‘걷기 좋은 명품숲길 50선’을 선정했다. 대부분 하루 만에 산행할 수 있고 접근성이 높아 국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숲길이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고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점도 특징이다. 그동안 가꿔온 산림을 통해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2023년 3월 지방자치단체와 소속기관의 추천을 받아 명품숲길 30선을 뽑고 7월에는 국민 신청을 받아 20선을 추가했다.
명품숲길 50선은 경사가 완만하고 편의시설이 잘 정비된 코스, 유명 전망대를 만날 수 있는 코스 등 등산 초보도 오를 수 있는 곳들로 구성됐는데 특히 ‘무장애 숲길’은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등도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안산 순환형 무장애 자락길’, 인천 남동구의 ‘만수산 무장애 숲길’, 부산 북구의 ‘구포 무장애 숲길’ 등이 해당된다.
이 중에서 안산 순환형 무장애 자락길(이하 안산 자락길)을 찾았다. 안산 자락길은 연간 방문객이 80만 명에 달하는 전국 최초 순환형 무장애 길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볼 만한 도보여행 코스 베스트10’에도 꼽혔을 만큼 도심 속 힐링 숲길로 사랑받고 있다. 봄이면 수천 그루의 벚꽃나무, 여름이면 초록빛 가득한 메타세쿼이아 숲, 가을이면 붉고 노란 단풍이 맞이하는 곳,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무악재역·홍제역 등 어느 방향에서 출발해도 닿을 수 있는 자연이다.
메타세쿼이아의 비경 속으로
독립문역 5번 출구를 나와 약 300m를 직진하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보인다. 동시에 안산 자락길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가 안산 자락길 곳곳에 세워져 ‘길눈이 어두운’ 사람도 방향을 잃을 염려는 없다. 임시정부기념관을 중심으로 진입로가 갈린다. 안산 자락길 능안정 쪽으로 가고 싶다면 기념관을 지나쳐 한성과학고등학교 방향으로, 북카페 쉼터 쪽을 원한다면 기념관을 통과하는 계단을 오르면 된다. 방향의 차이일 뿐 어디를 선택하든 7㎞ 이어지는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안산 자락길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이기 때문이다.
계단 끝에 다다르면 울퉁불퉁한 경사길이 등장한다. 걷다가 ‘이 길이 맞나’ 싶을 즈음 나무 데크길이 펼쳐지며 무장애 자락길의 시작을 알린다. 안산 자락길은 경사율 9% 이내로 조성됐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도 불편 없이 오갈 수 있다. 대신 자전거 통행, 등산스틱 사용, 아이젠 착용은 금지다.
일부 구간은 이준, 남자현,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에 대한 안내판으로 꾸며졌다. 이들의 생애, 핵심 공적이 적힌 안내판을 읽다 보면 숲속 분위기가 또 다르게 느껴진다. 가파른 산책로였다면 숨을 돌리느라 주변을 둘러볼 마음이 덜했을지 모른다. 평탄한 길이 주는 여유로움의 매력이다.
안산은 높이 296m의 낮은 산이다. 때문에 전망대에서 엄청난 높이감을 느낄 순 없지만 인왕산과 북한산 자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산을 배경으로 고층 아파트와 주택가가 어우러진 풍경도 흥미롭다. 서울 야경이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다.
눈과 코가 즐거운 것과 더불어 맨발로도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폭 2m에 이르는 황톳길이 450m가량 이어진다. 황토가 묻은 채로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걱정은 내려놓아도 된다. 황톳길 양쪽 끝 지점에 세족시설과 쉼터가 마련돼 있다.
안산 자락길의 진가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구간에서 드러난다. 서울 도심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울창함을 자랑한다. 군데군데 놓인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면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쏟아질 것 같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은 덤이다.
보행약자 보듬고 멋진 전망 내어주는 산
저마다의 속도로 걷다 보면 어느새 안산 정상(봉수대)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곳은 흙길, 바윗길, 계단이 섞였다. 봉수대에 올라가면 시야가 탁 트인다. 남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용산, 여의도, 목동 등 서울 남부 지역의 빌딩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나무 데크가 아닌 구간이 또 있다. 웬만한 운동기구는 다 갖춰진 일명 ‘산스장(산과 헬스장을 합친 신조어)’이다. 기다란 밧줄에 매달려 온몸을 뻗는가 하면 무거운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는 등 ‘무림의 고수’ 같은 노년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널찍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쉼터에 앉아 간단한 요기를 할 수도 있다. 이곳에 여유롭게 앉아 방문객을 구경하는 것도 묘미다. 가벼운 차림으로 데크 위를 달리는 사람, 속도를 맞춰 걷는 반려인과 반려견, 어깨 위에 앵무새를 얹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등산길 초입이나 끝자락에 화장실이 있는 것과 다르게 안산 자락길에선 중간중간 화장실을 찾을 수 있다. 출출함을 달래줄 곳도 있다. 서대문지역자활센터 카페사업단 ‘커피지기’의 푸드트럭이 산복도로 옆 쉼터에서 매일 문을 연다. 차고 따뜻한 음료는 물론이고 수제 샌드위치가 준비돼 있다.
안산은 ‘아낌없이 주는 산’으로도 통한다. 옛 이름이 모악산(母岳山)으로 ‘어머니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모든 보행약자를 보듬고 높지 않은 곳에서 멋진 전망을 내어준다는 이유에서다. 친절한 이정표를 따라 쭉 돌아나오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초록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고 나오는 길, 서울 도심 한가운데 이런 명품 숲길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