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주세요!” 큐 사인에 맞춰 스피커에서 ‘아모르 파티’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자 참가자들의 스텝이 분주해진다. 경쾌한 음악으로 아침을 여는 서울 마포구민체육센터 라인댄스 강습에 모인 주부들이다. 이들에게 바라는 정책을 묻자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수줍어하더니 이내 봇물 터지듯 저마다의 바람을 전한다. 가사를 책임지는 주부로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주부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어느 한 분야에 국한돼 있지 않다. 평범한 주부들이 전하는 의견에 귀 기울여보자.
“아이 낳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나라 원해”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즐겨 보고 있어요. 극중에서 젊은 부부가 고민을 해요. 계약직으로 일하는 아내가 임신으로 직장을 관두면 자신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해요. 맞벌이 부부에서 외벌이 남편이 되면 경제적 어려움도 따를 것이고 출산 후 아내가 출근하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생기겠죠.
드라마 속 모습이 드라마 같지만 않네요. 우리 집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제게는 큰아들이 결혼해서 낳은 두 명의 손자가 있어요. 두 손자가 정말 예쁩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큰 아들 부부는 고민이 많은가 봐요.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둘째 아이를 낳고 복귀했어요. 일하며 아이 둘을 도저히 돌볼 수 없는지 며느리가 제게 어렵게 말을 꺼내고 저희 집 근처로 이사를 왔어요. 그렇게 생후 5개월부터 돌봐온 둘째 손자가 벌써 아홉 살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기고 일할 수 있는 맞벌이 부부가 얼마나 되겠어요?
큰아들의 생활을 보며 둘째 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데 부담을 갖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생활은 정말 기본적인 건데, 마음 편하게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아울러 요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관심이 높은데요. 그건 제가 각각 다른 입장의 두 아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한 명은 사업을 하며 월급을 주는 입장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는 입장이거든요. 그런 동화가 생각나더라고요.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를 하는 두 아들 때문에 날씨가 좋아도, 비가 와도 마음이 불편한 엄마의 이야기 있잖아요. 제 심정이 딱 그래요. 정부가 국민 모두를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성급하지 않게 정책을 추진해갔으면 좋겠어요.
유정숙(63·가명)
“여성과 청소년이 안전한 사회 되길”
홍대 인근에 거주하고 있어요. 이 지역이 젊음의 거리로 번화한 곳이기도 하지만 술집과 유흥시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밤이면 집에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에요. 딸 가진 부모라면 더욱 그럴 거예요. 지역마다 자율방범대를 조직해 순찰을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더욱 활성화되면 좋겠어요. 자율방범대원이 있는 것만 해도 한결 든든하고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나아가 치안이 좋아져서 여성과 청소년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강력 범죄에 대한 형량을 강화했으면 좋겠어요. 간혹 범죄를 저지르고도 만취나 심신미약을 악용해 감형을 받는 사례가 있잖아요.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유사한 사례 같은데 청소년이 범죄자 또는 또래에 의한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청소년에 대한 처벌도 다시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처벌 강화가 범죄율 감소와 관계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저는 범죄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용희(52)
“장바구니 물가·안전한 먹거리 신경 써주세요”
주부다 보니 가계 물가에 민감한 편이에요. 그런데 갈수록 물가가 오르는 것 같아 시장에 가서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다른 품목이 오르는 건 절약하며 살 수 있지만 먹거리와 생필품 가격이 오르는 건 참 난감해요. 2016년에 하루 1만 원씩 생활비 쓰기에 도전해본 적이 있는데, 쉽진 않았지만 가능하더군요. 그런데 지난해에는 안 되더라고요. 그만큼 물가가 올랐다는 거겠죠. 다른 품목은 몰라도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품목에 한해서는 물가가 오르지 않도록 정부에서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주부로서 안전한 먹거리에도 관심이 많아요. 살충제 달걀 파동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는 참 힘들었어요. 달걀은 우리 식탁에 날마다 오르는 품목인데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밥상에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동안 먹거리 안전성이 제기된 게 달걀이 처음은 아니잖아요. 그럴 때마다 가장 불안해하는 이들이 주부들일 거예요. 먹거리의 안전이 가족의 안전과 직결되니까요. 식품 안전의 기준을 강화하고 누구나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랍니다.
양정임(66)·정인숙(54)
“학교에서 인성교육에 집중해주세요”
대학생, 중학생, 다섯 살 터울의 두 자녀를 기르고 있어요. 그런데 첫째를 기를 때와 지금 둘째를 기르는 5년 사이에 참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진 것 같거든요. 첫째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학원에서 배웠다는 걸 전제로 수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중학생 아이가 학업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더라고요. 학교가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교육하는 곳이잖아요. 학창 시절에 올바른 인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더욱 신경을 써주길 바랍니다.
성형신(48)
“도시정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민 의견”
저희 부부는 평생 땀 흘려 번 돈으로 서울 아현동에 작은 빌라를 마련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노후를 위해 어렵게 마련한 빌라가 재건축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문제는 시세의 절반도 되지 않는 보상액을 제시한다는 점이에요. 시세와 공시지가 차이가 큰 거죠. 이웃 중에는 보상금으로는 비슷한 주택을 구할 수 없어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평생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있어요. 재건축 결정 과정에서 진행 상황을 모르는 주민도 많아요. 가장 중요한 건 주민들의 의견에 관심을 갖고 반영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무분별한 재건축을 추진하기보다 리모델링해서 살 수 있는 공간은 그대로 살려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순복(58)
“국민 건강 위한 체육시설 확대되길”
건강은 모두의 바람일 거예요. 우리가 댄스 강습을 받는 이유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죠. 즐거운 음악만으로도 가벼운 스텝을 밟으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주부가 찾는 거잖아요. 이러한 공간이 좀 더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국민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지금 이 강습만 해도 25명을 모집하는데 30명 넘는 수강생이 함께하고 있어요. 참여하고 싶은 인원에 비해 물리적 공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죠.
댄스 강습은 음악만 있으면 즐기며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만 날씨에 제약을 많이 받아요. 요즘같이 추울 때나 비가 오면 실내에서만 할 수 있죠. 가장 좋은 것은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이 늘어나는 것이지만 천막이나 텐트 지원만 확대돼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 같아요. 국민의 질병 치료를 지원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홍금순(69)
“노숙자 자활 프로그램 늘어났으면”
지난 주말에 새로 생긴 서울-강릉 KTX를 타고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지만 청량리역에서 가슴 아픈 장면을 목격했죠. 길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었어요. 이 추운 겨울에 얼마나 힘들까 싶더라고요. 정부에서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노숙인들을 위한 정책이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노숙인들의 시설이 부족한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그렇다고 길에서 생활하는 걸 원해서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노숙인들이 다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자활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할 것 같아요. 노숙인이 잡지를 판매하는 모습을 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그런 게 좋지 않을까요? 노숙인 중에서도 기술과 근로 의욕을 갖고 있지만 심리적 어려움으로 선뜻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들을 위한 따뜻한 손길과 정책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송선길(68)
“반려 동물 1000만 시대 맞게 법·제도 정비를”
얼마 전 ‘TV 동물농장’에서 강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사연을 봤어요. 강아지를 유기한 사람을 찾았지만 관할 경찰서도 지자체도 처벌할 근거가 없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죠. 강아지를 기르는 입장에서 참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나라가 반려 동물 1000만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인식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요. 반려 동물은 생명체고 가족이에요.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의 이기심 때문에 기분에 따라 입양하고 유기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네요. 반려 동물을 버리는 행태가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처벌이 미미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 벌써 세 번째 반려견을 기르는데 사람에게 주는 위안이 정말 커요. 반려견은 사람 하기 나름이에요. 주인이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 얌전하기도 하고 성격이 나빠지기도 하죠. 애정과 관심으로 반려 동물을 대하고 반려 동물이 주는 기쁨만큼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 조금 더 나아질 거라 믿어요.
가족처럼 기르는 반려 동물이 아플 때는 참 힘들어요. 마음이 안 좋기도 하지만 병원 치료비가 너무 비싸기도 해요. 반려 동물에 대한 예방접종 비용과 치료비 등에 대한 해법도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조윤희(64)·이영숙(64)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