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나전칠기는 우리 삶과 함께했다. 나전칠기 장롱이 필수 혼수품인 시절도 있었다.
이러한 한국 대표 공예품인 나전칠기가 점차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나전칠기는 칠공예의 장식 기법 중 하나다. 흔히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어 물건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것을 통칭한다. 여기에 옻나무 수액으로 덧입힌 옻칠도 포함된다. 우리에게 친숙했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나전칠기를 보존하고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뜻을 같이하는 나전, 옻칠 장인들이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 남양주지회를 만든 것이다. 공동 작품 전시와 작업을 함께하면서 나전칠기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양주시에 나전칠기 명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모임이 결성됐다고 한다. 4월 3일 남양주시 공방을 찾아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장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전통 예술품의 가치 인정해줘야”
과거에는 자개장롱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잘 안 써요. 안 쓰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문제죠. 소비자들이 너무 싼 것만 요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소비자들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나아가 그에 걸맞은 값을 매겨주는 문화가 아쉬워요. 요즘 자개를 배우고자 하는 여성분 들이 많아요. 부업으로 좋기 때문이죠. 가정일과 병행하면서 공예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입니다. 제 경우 아들이 나전을 배우고 싶어 해서 고민이 많이 돼요. 제가 고생을 많이 해서 솔직히 안 가르치고 싶어요.
박영태(55) 장인
“젊은 층도 전통공예 즐겨야”
옻칠은 무게감이 일반 칠과 확연히 달라요. 감촉부터 다르죠. 옻칠을 만지면 ‘살에 당기는 맛’이 있어요. 수천 년 맥을 이어온 공예이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알아야 발전이 있는데 아쉬워요.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이 나전칠기의 가치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관심은 있는데, 나전칠기를 보고 살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적어요.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것이 아쉽죠.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남녀노소 옻칠을 좋아하고 즐겨요. 반면 우리나라는 젊은 층의 관심이 너무 적죠. 전통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도록 더 많은 홍보가 이뤄지면 좋겠어요.
김종인(58) 장인
“옻칠의 색은 시간과 더불어 깊어져”
옻칠의 매력은 친환경입니다. 전자파는 물론 해로운 물질을 막아줘요. 옻칠한 그릇에 우유를 넣어 보관해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됩니다. 우유가 상하지 않고 오래 유지되죠. 균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토피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요. 예술적으로 봐도 옻칠의 색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욱 아름다워져요. 검은색에서 점차 맑아져요. 이러한 전통공예가 발전하려면 사용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수저와 같은 생활용품부터 과거처럼 나전칠기 장롱, 문갑, 화장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지자체별로 전시관을 만들어주면 더욱 쉽게 나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익종(60) 장인
“수천 년 역사를 잇는 데 자부심”
옻칠은 자연에서 나와요. 나전칠기의 역사는 수천 년이 넘죠. 칠로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해요. 옻나무 수액을 받아 정제해서 쓰는 것인데, 땅속에 넣어두어도 썩지 않아요. 고려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만든 작품은 지금 일본에서 국보예요. 이러한 전통공예의 맥을 잇고 있는 데 자부심을 갖습니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잘되지 않나요. 전통문화는 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잘 보살펴야 하는 것이죠. 사실 옻칠 분야 장인들이 많이 떠났어요. 옻칠에 빠진 사람만 남아 있다고 보면 돼요. 지원이 필요한 이유죠.
권영진(61) 장인(대한민국 칠기 명장)
“경력단절여성에게 전통공예 전수하면 좋을 듯”
외국인들을 만나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보이고 반응합니다. 나전 역시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에게 조개껍질로 만든 나전을 보여주면 표정이 변하면서 ‘넘버원’을 외쳐요. 나전으로 만든 명함 케이스를 선물해보면 이런 반응을 쉽게 볼 수 있죠. 아쉬운 것은 전통 나전을 전시할 공간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요즘은 여성들이 나전을 많이 배우려고 해요. 나전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환경에도 좋아요. 경력단절여성들이 새로 취업을 하려고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는데, 나전 전통공예를 배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배상만(65) 장인
“다음 세대에 전통의 맥 이어져야”
아직 배우는 입장이지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전국 나전 장인의 80%가 남양주시에 거주하고 있어요. 우리 협회는 전시, 교육 등을 통해 나전의 명맥이 지켜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 아동센터를 찾아서 공예교육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요즘 학생들은 나전을 접할 기회가 적어요. 너무 현대적인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나전과 같은 전통문화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요. 전통을 제대로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죠. 나전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공예작업입니다. 오랜 시간 작업에 매진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나전 장인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다음 세대까지 나전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김민채(43) 회장
“나전의 색은 자연의 색”
해외에서 나전을 전시하면 반응이 아주 좋아요. 외국인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높이 평가해요. 나전에는 자연의 색을 발견한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다만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나전을 보고 자라서 나전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너무 익숙해서 신비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중단 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해요. 한국인의 손재주에 감탄하기도 하고요.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놀라기까지 하죠.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죠.
황삼용(60) 장인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