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퍼니플랜’이 발표한 ‘2017 독립서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조사 기간 내에 문을 연 전국의 독립서점은 총 277곳이다. 독립서점이란 기존의 거대자본을 기반으로 한 대형서점의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주인의 취향대로 모은 책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소규모의 책방을 말한다.
지역별로는 서울에 위치한 독립서점이 128곳으로 전체의 49.8%로 가장 많다. 다음은 경기도가 총 30곳으로 11.7%를 차지했다. 이어 부산 15곳(5.8%), 대구·제주가 10곳(3.9%)으로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유례없는 독립서점 열풍이 일면서 많은 독립서점이 탄생하고 또 소멸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책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 “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독립서점의 지속 가능성이 유한할 것”이라는 등 엇갈린 예측을 내놓았다.
‘독립서점’이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그중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독자 개개인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지적 사유(思惟)가 가능한 독립서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가진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전국의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동네 책방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9%가 “동네 책방이 증가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고 답했다.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는 “이제는 부모 세대가 갖고 있던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의 신뢰가 무너졌고, 비주류 문화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작은 일을 조금씩 해보겠다는 움직임이 싹을 틔웠다”며 “그중에서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 중 하나가 독립서점이나 독립출판”이라고 했다. 독립서점 열풍은 서점 운영자들이 ‘서점’의 역할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경우라는 시각도 있다.
서울에만 128곳… 늘어나는 전국의 독립서점들
현재 서울 연희동의 ‘유어마인드’는 독립출판물과 아트북을 다루는 독립서점으로 지난 2009년 문을 연 1세대 독립서점의 상징이다.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는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 책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서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유어마인드 오프라인 서점을 열게 됐다”고 했다.
독립서점의 콘셉트는 그 개수만큼이나 다양하다. ‘2017 독립서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독립서점은 40개 이상의 다양한 콘셉트로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이 79곳, 커피와 차가 있는 서점이 59곳, 소규모 복합서점이 41곳,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36곳, 술이 있는 서점이 22곳, 그림책 서점과 헌책방이 20곳으로 뒤를 잇는다. 심리 전문서점(4곳), 식물이 있는 서점(3곳), 퀴어 서점(1곳), 시니어 서점(1곳), 요리 전문서점(1곳) 등도 있다.
이러한 시도 뒤에는 책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이 숨어 있다. 2015년 10월에 문을 연 서울 상도동의 ‘대륙서점’은 작가와의 만남, 다큐 상영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왔다. 박일우 대륙서점 대표는 “독립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책을 사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분들이 아직 많은데, 실제로 독립서점의 문턱은 낮다”며 “독립서점은 많아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젊은 층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근본적으로 책이 재미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말, 서울 합정동에 독립서점 ‘당인리책발전소’를 연 김소영 전 MBC 아나운서는 도쿄 책방 탐방 에세이 <진작 할 걸 그랬어>(위즈덤하우스)에서 “사실 일본의 독립서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는 이미 한국의 독립서점에서도 많이 시도하고 있다”며 “다만 일본에서는 그런 콘텐츠를 구매하려는 수요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 조금 부럽다”고 했다.
김경현 ‘다시서점’ 대표는 “운영 기간이 10년을 넘어선 독립서점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고르는 것은 대형서점에서 경험하기 힘든 독립서점만의 매력”이라고 했다.
▶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영추문 옆 역사책방' ⓒC영상미디어
독립서점 ‘영추문 옆 역사책방’
“연인들 책 나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요”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를 따라 청와대 방향으로 가다 보면 통의동에 한 역사책방이 나타난다. 책방 이름은 ‘영추문 옆 역사책방’. 최근 독립서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만큼 이곳 또한 한 분야에 특화한 서점이다. 이 책방은 ‘역사와 놀며 이야기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광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보유한 도서 5000여 권도 모두 역사와 관련된 책이다.
지난 6월 2일 역사 전문서점 ‘영추문 옆 역사책방’에서 백영란(54) 대표를 만났다. 백 대표는 “지난 5월 2일 문을 열었으니 딱 한 달 됐다”며 “오픈 행사 때 대학 은사이신 정옥자 선생님(국사편찬위원장 역임)께서도 축하와 함께 서점 경영을 걱정해주셨다”며 웃었다.
백 대표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뒤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이버를 거쳐 2010년부터 엘지유플러스에서 ‘사내 첫 사업 담당 여성 임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3월 퇴직했다.
백 대표는 서점 물색을 위해 퇴직 한 달 전인 지난해 2월부터 사직단에서 창경궁까지 사대문 안을 두루 훑었다. 역사 서점이라 사대문 안을 염두에 두었고, 지난해 9월 지금의 자리를 찾았다.
백 대표는 “1년 동안 신문사의 북 리뷰, 지인들의 추천 등을 바탕으로 갖춰야 할 역사책 목록을 만들었다”며 “5000권 정도를 추렸는데, 이 가운데 3000권 정도가 현재 매장에 들어왔다”고 했다.
새 책과 주요 역사 위주인 대형 서점과 달리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를 다룬 책을 많이 모았단다. <실크로드 유목민의 역사>가 그런 예이다.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있는 역사죠.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유목민이 살았던 유라시아 지역이 우리가 살 길이거든요.”
문을 열고 한 달이 지났다. 백 대표는 요즘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주변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참 많이 주시지만 돈벌이가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책방엔 카페 공간이 따로 있어 음료와 간단한 스낵을 먹으며 책을 볼 수 있다. 이 달엔 강연 행사도 열 예정이다. 6월 14일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와 류근 시인이 조선사를 주제로 대담하고, 이어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저자인 배기찬 씨가 북한 개발 프로젝트를 주제로 강연하고 토론을 벌일 계획이다.
백 대표는 “역사책방에 연인과 함께 들러 책을 사가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며 “책은 영화처럼 떴다가 잊히는 구조여선 안 되고, 좋은 책은 계속 독자들 곁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오동룡│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