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열에 눈을 뜬 아내와 아이를 위해 준비해온 그늘막을 꺼내 그늘을 만들었다.
■코로나19 시대 ‘차박’ 체험기
#1 “큰 차만 차박을 할 수 있다는 건 편견이다. 시트를 접으면 성인 두 명까지 누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완성된다.”
-경차 ‘차박인’ 김소희(34) 씨
#2 “차박의 기본인 평탄화 작업과 수납공간까지 마련한다면 완벽한 미니 캠핑카로 탈바꿈된다.”
-소형 SUV ‘차박인’ 박정현(26) 씨
#3 “최근 우정 여행을 주제로 파티용품을 가득 싣고 차박을 떠났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여행이 되었다.”
-경차 ‘차박인’ 이재영(42) 씨
▶날이 밝자 트렁크 너머로 파란 바다가 보였다.│김성원
비대면 여행 확산 ‘차박’ 이용자 크게 늘어
‘차박’ 캠핑 열풍이 불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데다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비대면 여행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박은 여행할 때 자동차에서 잠을 자고 머무르는 것으로, 자동차로 이동해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기는 ‘오토캠핑’과는 다르다. 차박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 ‘차박캠핑클럽’ 운영자 ‘둥이아빠’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2020년 1월부터 5월까지 카페 신규 가입자는 전년 동기(9476명) 대비 5배 수준인 4만 6877명이다.
차박용품 수요도 급증하는 분위기다. 텐트 및 캠핑용품 전문 브랜드 폴라리스 관계자는 “현재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면서 “텐트는 원터치, 돔 텐트, 차박 텐트 등 종류를 막론하고 다 팔린 제품이 속출하고 있으며 탁자, 의자, 자충매트 등도 재입고 후 불과 1~2주 만에 모두 팔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텐트 등 장비를 이것저것 구매하느니 아예 차량을 캠핑용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 캠핑카 개조(튜닝)업체 대표는 “(캠핑 차량 개조가) 30~50% 늘었고 문의도 2배 이상 늘어났다”며 “코로나19로 밀폐된 공간을 꺼리면서 실내 숙박 대신 캠핑이 인기를 끄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국내 차박 문화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처음엔 낚시인이나 등산객이 한밤에 차에서 쪽잠을 자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오토캠핑에서 간소한 차박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최근엔 차박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둥이아빠’는 “요즘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차박하면서 전국 일주를 하는 것”이라며 “오토캠핑과 달리 많은 짐이 필요 없고 기동성이 좋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숙소 등의 절감 비용으로 주변 상권을 이용한 맛 기행도 차박만이 누릴 수 있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요즘 ‘차박인(차박하는 사람)’들은 캠핑 하면 떠오르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 정보를 공유하고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편안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즐긴다. 차박 마니아들은 “오토캠핑보다 간소한 만큼 적합한 장비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6월에 가족과 함께 첫 차박을 떠난 김성원(41) 씨도 그중 하나다. 10여 년 전 캠핑에 입문한 그는 최근 차박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공감>이 김성원 씨의 차박 체험기를 들어봤다.
▶세 식구의 첫 차박 장소는 강원도 강릉 안목해변이었다.
‘차박만을 위한 아이템’ 준비하기
“내일 퇴근 후 차박 캠핑하러 갈까?” 김 씨의 첫 차박 여행은 목요일 저녁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오랜 시간 ‘캠핑광’이었던 그는 최근 차박에 관한 정보를 조금씩 수집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캠핑장은 왠지 꺼려졌다. 가족과 편안한 여행을 위해서는 10여 년의 캠핑 내공에 ‘차박만을 위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카페에 가입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수백 개의 관련 정보를 훑었다. 차박을 경험한 지인들에게 주의사항도 꼼꼼히 물었다. 준비 과정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여행은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가족에게 불편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의 즉흥 제안에 동갑내기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도 흔쾌히 따라나섰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목적지는 강원도 해변으로 정했다.
차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몇 가지 과정이 있다. 우선 평탄화 작업(차 안을 침대처럼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요즘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SUV)은 의자를 접으면 누워 잘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더 넓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 운전석(1열)과 뒷좌석(2열)을 최대한 앞쪽으로 당기는 것이 팁이다. 뒷좌석을 앞으로 옮기면 트렁크와 사이에 공간이 확보된다. 이곳은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고 그 위에 에어매트나 발포매트를 깔면 된다. 주의할 점은 짐을 많이 가져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잠자리를 마련할 때 짐을 놓을 데가 없어진다. 차 밖에 두면 분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만 챙기는 게 중요하다.
여름철 차박을 할 때는 특히 벌레 차단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시동을 끄고 창문을 열어놓을 경우 모기 등 벌레가 차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문에 끼울 수 있는 모기장과 트렁크 크기에 맞는 차박용 텐트를 준비하면 좋다. 잠자리에 들기 전 모기향이나 전자 파리채로 벌레를 정리하고 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숙박이 해결됐다면 휴식과 식사, 세면을 위한 용품도 챙겨야 한다. 그늘막(미니 타프)과 의자(릴랙스 체어 또는 에어 체어), 탁자, 코펠, 버너, 샤워텐트를 ‘경량형’으로 준비한다. 날씨도 큰 변수가 될 수 있으니 기상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기본적인 준비가 끝났다면 계획한 주제에 맞는 대략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면 된다. “차박의 수많은 매력 가운데 하나가 상황에 맞는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출이 멋진 바다, 숲이 우거진 산, 시원한 계곡, 별이 많은 곳….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철수 쉽고, 기동성 좋아 어디든 ‘고고’
세 식구의 첫 차박 장소는 강원도 강릉 안목해변이었다. 차박 장소로 유명해 많은 ‘차박인’이 몰리지만 공간이 넓어 자리를 잡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도착 직후 아내와 아이는 주변 편의시설 위치를 파악하러 나섰고 김 씨는 차박 세팅을 시작했다.
가져간 필수 아이템으로 완벽한 잠자리를 마련하고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됐다. 이내 세 식구는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해변은 아늑하고 파도 소리는 포근했다. 날이 밝자 트렁크 너머로 파란 바다가 보였다. 나무 그늘이 있는 해변이 아니기 때문에 곧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열기에 눈을 뜬 아내와 아이를 위해 준비해온 그늘막을 꺼내 그늘을 만들었다.
안목해변 주변은 편의시설이 많아 커피와 케이크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은 마치 선물 같았다. “이제 어디 갈까?” 해변을 한 바퀴 돌며 다음 여행지로 향할 준비를 했다. 텐트를 친 게 아니기 때문에 철수도 쉽고, 기동성이 좋아 바로 어디든 떠날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강릉 중앙시장으로 정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면 현지 시장에 들러 장을 보거나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이날도 줄을 서서 유명한 닭강정과 호떡, 아이스크림 등을 아이와 함께 사먹으며 시장 곳곳을 구경했다.” 이후 20분 거리에 있는 막국숫집에서 시원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30분 정도 달려 망상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신혼 때 아내와 캠핑의 추억이 깃든 장소라 아이와도 함께 와보고 싶었다. 바닷가에서 아내와 아이는 모래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그늘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깐의 여유를 뒤로하고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속초에 들러 저녁 먹고 집으로 갈까?” 바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잠깐 고민하는 사이 아내가 주차장에서 삼척 촛대바위 안내판을 발견했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그 촛대바위였다. ‘또 언제 오겠어’ 하는 생각에 목적지를 바꿔 삼척으로 출발했다. “차박은 상황에 맞게 목적지를 쉽게 바꿀 수 있다. 차를 달리다 좋은 곳이 있으면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면 된다. 차박 캠핑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안목해변 주변은 편의시설이 많아 커피와 케이크로 아침 식사를 했다.│김성원
“달리다 좋은 곳 있으면 그곳이 목적지”
망상해수욕장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삼척 촛대바위 주차장에 도착했다. 청량하고 시원한 바람이 맞아주었다. 여행의 피로도 바닷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애국가 자료화면에서만 보던 촛대바위의 웅장한 모습과 함께 어우러진 푸른 바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이번 여행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꽉 채운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첫 차박 여행을 다녀온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특히 아이가 어떤 ‘감상평’을 내놓을지 기대됐다.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즐거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학교에서 쓴 감사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텐트가 아니라 차에서 잔다는 게 신기했어요. 물론 숙소에서 자는 것보다 불편했지만 특별한 여행이었어요.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아빠에게 감사해요.”
초보 캠퍼였던 10여 년 전 김 씨는 아내와 둘이서 더위를 피해 해변에 조그만 텐트를 치고 하루 바람 쐬고 오는 식으로 휴가를 보냈다. 그마저도 캠핑 초보의 미숙함으로 ‘사서 고생’을 했다. 벌레의 공격은 물론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캠핑 장비도 다양하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도 거의 없었다.
시행착오 끝에 10여 년 사이 자동차도 세단에서 SUV로, 텐트도 네 번 정도 바꾸면서 자신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을 찾아갔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캠핑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을 찾기 위해 차박 여행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첫 차박을 통해 여유롭게 편히 쉬다 온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인터뷰를 하는 이 순간, 다시 떠올려봐도 잊을 수 없는 여행이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차박 캠핑을 고민 중이라면 이번 주 바로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강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