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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오직 적적하기를 꿈꾸며 산중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적적함이야말로 때때로 오히려 번잡함을 부르니, 이 무슨 심사인가? 사람과 사람의 정 또한 그러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회자정리가 쉽지 않은 일이 있으니, 바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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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지리산 성삼재에서 사냥개 한 마리를 얻어왔다. 산에서 처음 만났으니 그 이름을 ‘산’이라고 지었다. 온몸이 검은 이 강아지의 혈통은 원래 독일산 사냥개였으나 지리산에서 몇 대를 이으며 아름다운 ‘잡종’으로 거듭난 개였다.
순종보다 잡종, 이 잡종이라는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이력서인가? 사람도 그러하거니와 사실 순종이라는 말은 근친상간의 다른 이름 아닌가?
어쨌든 ‘산’이라는 이름의 이 강아지와 ‘나무’라고 부르는 발바리를 키웠는데, 둘 다 매우 영특한 수컷이었다. 1년 반 동안 섬진강과 지리산을 함께 산책하는 나의 참다운 벗이었다. 그러나 이름을 ‘산’이라고 지어서였을까? ‘산’은 자주 산으로 가더니 끝내 입산하고 말았고, ‘나무’는 매화나무 아래서 지금까지 나와 살고 있다. 갑자기 외로워진 ‘나무’를 위해 코크스패니얼 암컷 한 마리를 얻어왔는데, 이게 바로 문제의 발단이었다.
만나자마자 시기와 질투에 못 이겨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나무’는 저의 기득권을 유지하느라 경계했고, 새로 온 ‘예삐’는 또 내게 잘보이려고 짧은 꼬리를 흔들며 온갖 아양을 다 떨었다.
그렇게 경계의 1주일이 지나자 마침내 ‘나무’와 ‘예삐’는 춘정을 못 이기는 연인이 되어갔다. 하지만 동정남, 동정녀의 첫 경험은 쉽지 않았다. 오전 내내 애만 쓰는 게 안타까웠지만 나 또한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다 마당 볕이 좋은 오후 3시 무렵에야 마침내 성공했는데, 얼마나 좋았으면 이놈들이 해가 지기도 전에 또 한번 합궁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늦은 저녁이었다. 합궁했으면 잠자리 또한 동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무’가 그 사이를 못 참고 일생의 첫경험을 자랑하러 마실을 나갔다. 하필이면 이놈이 아랫마을 외딴집의 무시무시한 호피 무늬 진돗개를 찾아간 것이다. 운우지정의 냄새를 폴폴 풍기며 약을 올렸으니 어찌 됐겠는가?
순식간에 일격을 받아 오른쪽 앞다리와 뒷다리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중상을 입고 말았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안락사시켜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신방을 차리자마자 중환자가 된 ‘나무’는 ‘예삐’와 어쩔 수 없이 별거해야 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른 지금 ‘나무’는 왼쪽 두 다리만으로 절묘하게 뛰어다닐 정도가 되었으며, ‘예삐’는 바로 그날 이후부터 자꾸 배가 불러오더니 마침내 매화꽃 환한 봄날 새끼 일곱 마리를 낳았다.[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
얼떨결에 아홉 식솔의 가장이 된 '나무' 절뚝절뚝 안절부절못하며 새끼들 근처를 배회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여전히 세상 철부지인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킬킬 웃음이 나온다.
서투르지만 그래도 모성과 부성이 지극한 견공 일가의 봄날을 엿보며, 적막이 깨진 ‘개판’의 산중에서 저잣거리의 인간사를 미루어 짐작해 본다. 그리고 나는 반성한다. 앞으로 일평생 ‘개새끼’ 혹은 ‘개 같은 놈’이라는 욕을 삼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