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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1,original,right[/SET_IMAGE]산수유꽃이 송이송이 환하게 피어나는 봄밤이었다. 지리산 문수골 왕시루봉 자락의 외딴집에서 노트북을 켰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인터넷에 접속하니 이미 전국의 네티즌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리산 오지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또 예비 시인이나 독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인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서울의 도봉산 아랫마을과 강원도 삼척, 그리고 청주·성남(분당)·포항·대전·순창·광주 등 곳곳의 사람들과 동시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마침내 정보화사회가 무르익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은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원장 신경림)가 3월22일부터 4월1일까지 마련한 ‘유명 시인과 네티즌의 사이버 미팅’ 첫날밤이었다. 선발주자로 내가 나서고 신경림·김지하·나희덕·유용주·박남준·박영근·함민복·신용목 등 시인이 참가해 하루에 두 시간씩 독자들과 직접 사이버 미팅을 시도하는 획기적 행사였다.
봄밤에 독자들과 함께하는 채팅은 진지하면서도 편안했다. 따스한 봄기운이 유선과 무선을 타고 지리산 시인과 전국 독자들의 안방을 넘나들었다. ‘시여, 따라오라’는 주제를 내건 나는 처음에는 채팅에 익숙하지 않아 독자들의 다양한 질문에 일순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 긴장을 어느 정도 즐기며 성실하게 답했다. 각 지역 독자들의 다양한 견해에 수긍하기도 하고 반론을 펴기도 했지만, 모두 아늑한 봄밤의 기운 속에 마치 얼굴을 마주보며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듯했다.
사실 네티즌이나 채팅에 대해 나는 일종의 불순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정보화시대의 장점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익명의 방종에 가까운 해방감과 극단적 소외감이 교차하는 사이버 공간을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따금 접속해보면 익명에 기대어 마구 휘갈겨대는 댓글은 언어의 파괴와 비인간화를 부추기는 듯했다. 인터넷의 이메일이나 휴대전화보다 우체국을 통한 편지나 엽서를 더 순결하게 보았고, 그처럼 속도보다 반속도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된 정보화시대를 무조건 불순한 편견으로만 보기에는 그 장점 또한 많아 보였다. 특히 독자들과 사이버 미팅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불가에서 얘기하듯 우리 모두는 하나하나 그물코에 매달린 맑은 구슬이라는 ‘인드라망’의 세계가 현현(顯現)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동시에 공간을 초월해 만날 수 있는 인터넷시대는 어찌 보면 우주 자연의 섭리와 흡사하지 않은가? 매화꽃이 서로 메일을 보내지 않고도 앉은 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화르르 타오르고, 유선이나 무선의 통신망 없이도 그렇게 온몸으로 봄을 밀어올리지 않는가?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다만 문제는 인간들이 쌓아올린 최첨단 문명에 오히려 인간이 소외되거나 파괴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인터넷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터넷을 비롯한 최첨단 정보화시대에 물을 주고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면 문명의 이기마저 인간과 공존하는 자연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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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