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답만 하던 인공지능(AI)이 사람 대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기술업계에서는 이를 ‘AI 에이전트’라 부른다. 과거의 AI가 질문을 이해하고 적절한 답을 내놓는 데 그쳤다면 현재의 AI는 문서를 읽고 이메일을 보내며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자료를 비교하고 회사 업무의 여러 단계를 스스로 처리한다. “디지털 세계에 새로운 직원이 생겼다”고 말하는 이유다.
AI 에이전트의 가장 쉬운 정의는 ‘목표만 말하면 실행 방법은 스스로 판단해 일을 처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연례 콘퍼런스인 ‘이그나이트(Ignite)’에서 MS는 사용자가 “지난해 대비 올해 매출을 분석해줘”라고만 말하면 AI 에이전트가 필요한 파일을 찾아 열고 엑셀을 실행해 데이터를 비교한 뒤 분석 보고서까지 만들어주는 기술을 공개했다.
실제로 MS가 이날 공개한 여러 AI 에이전트는 “1분기 매출 비교해줘”라는 한 문장에 반응해 내부 자료를 스스로 찾아 분석했다. “고객 제안서를 10페이지로 만들어줘”라는 지시에는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기본 구조와 초안을 즉시 구성했다. “4페이지를 더 간단히 바꿔줘” 같은 자연어 편집도 그대로 반영됐다.
업무용 플랫폼 ‘팀즈(Teams)’에는 회의 흐름을 관리하는 ‘AI 진행자’가 탑재됐다. 회의에 늦게 참여한 사람에게 지금까지의 논의를 자동으로 요약해주고 발언 시간이 치우치면 균형을 잡아준다. 운영을 담당하는 에이전트는 기업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예컨대 항공편 지연으로 고객 스케줄이 꼬인 과거에는 직원이 일일이 사유를 확인하고 환승이 어려운 승객을 찾아 표를 다시 발권해야 했지만 에이전트 시대에는 “파리행 항공편 지연률이 10%를 넘으면 자동으로 재예약하고 승무원에게 알려줘”라는 규칙만 설정하면 된다. AI가 먼저 감지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며 직원은 결과만 확인하는 구조다.
이 흐름에 뛰어든 기업은 MS만이 아니다. 구글은 사용자의 이메일·캘린더·드라이브 전체를 기반으로 일정 조율, 자료 수집, 문서 생성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통합 에이전트를 내놨고 스노우플레이크·세일즈포스·서비스나우 같은 엔터프라이즈 기업들은 고객 문의 분석, 재고 확인, 발송 지시 등 여러 시스템 사이를 오가야 하는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에이전트를 속속 출시하고 있다. 제품마다 기능은 다르지만 모두 ‘직원을 대신해 일하는 디지털 동료’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건 동일하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 에이전트를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도입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에이전트가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몇몇 회사의 AI 모델을 바탕으로 만들다 보니 서비스들끼리 기능과 성능이 비슷해지고 있다. 또 각 소프트웨어 회사는 자기 회사 제품끼리 연결해서 쓸 때 가장 성능이 잘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비슷한 에이전트를 여러 개 테스트하고 중복 도입하는 비효율에 빠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AI가 비용을 줄이기는커녕 새로운 사스(SaaS,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과잉 시대를 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술적 완성도 역시 아직은 제한적이다. 에이전트의 정확도가 95%까지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사람 없이 전적으로 맡기기에는 5%의 오류가 치명적일 수 있다. 보안 문제도 크다. 에이전트가 내부 문서, 고객 정보, 재무 시스템에까지 직접 접근하면서 데이터 이동량은 급증했고 기업은 새로운 형태의 정보 유출 위험에 노출됐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은 에이전트 도입 과정에서 시스템 충돌, 잘못된 데이터 연결, 복잡한 설정 문제 등이 반복돼 결국 사람이 하나하나 검사하고 고치느라 ‘이중 업무’를 경험했다고 토로한다.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운영체계에 녹이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의 AI 에이전트 기술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 에반 래틀리프는 최근 ‘허루모AI’라는 AI 직원만으로 구성된 회사를 직접 만들고 운영했다. AI 직원들은 이메일·문자·슬랙·전화까지 활용해 스스로 업무를 이어갔고 경력과 성과를 만들어 외부 투자자와의 대화까지 준비했다. 물론 혼란도 적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사용자 테스트 결과를 보고하고 가짜 계획을 세우는 등 허구와 과장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일부 결과물은 실제 서비스로 발전할 만한 수준이었고 벤처캐피털로부터 프로젝트 미팅 요청까지 받았다. AI 직원이 현실 세계의 일을 일정 부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지금의 AI 에이전트 시장은 가능성과 불안정, 효율과 혼란이 동시에 존재하는 과도기 한가운데에 서 있다. MS는 에이전트 도입의 목적이 인력을 줄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높은 가치의 업무로 이동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분명한 것은 AI 에이전트가 완성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기술이 실제로 기업의 업무 구조를 어떻게 재편할지, 인간의 역할과 고용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서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을 반복 업무에서 해방시키는 도구가 될까, 아니면 새로운 혼란을 부르는 골칫거리가 될까. 지금은 그 가능성과 위험이 동시에 열려 있는 순간이다.
원호섭
과학이 좋아 마블 영화를 챙겨보는 공대 졸업한 기자. ‘과학 그거 어디에 써먹나요’, ‘10대가 알아야 할 미래기술10’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