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도 참지 못하는 세상이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날아오고 누리소통망(SNS) 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친구들 혹은 아는 사람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여행까지 시시콜콜한 일상을 다수에게 알린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알려놓고 반응을 기다린다. 일부 연인 중에는 답이 없으면 ‘왜 나를 무시하느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다그친다. 심지어 즉시 답문자를보내지 않았다며 싸우다 헤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며칠 심지어 몇 주 동안 다른 사람의 소식을 듣지 못해도 무덤덤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통했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오랫동안 저금통을 채우고, 친구가 보낸 편지를 몇 날며칠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우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생활 속에서 즉각 소통은 기본이 됐고, 망설임 없이 신용카드를 긁는다. 물건을 주문한 뒤에는 ‘당일배송’이나 ‘총알배송’을 당연시한다. 어쩌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변해버린 걸까.
저자는 나르시시즘의 대두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양극화 등 언뜻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사회 병폐를 ‘근시안성’이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본다. 먼저, 자기만 아는 소비 취향으로 변해버린 사회와 개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스마트 전화기부터 기적 같은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개인용 상품을 잇따라 빠르게 쏟아내지만, 장기적인 경제 안정에 필수인 ‘공공재’를 충분히 생산하지 않는다. 또한 TV, 좌석 보온기구, 치아 미백제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술집을 안내해주는 앱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금융제도 개혁이나 기후변화 대처방안 등 현실 세계의 굵직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부터 손써야 할지 모른다."
마치 내일은 없고 오늘만 존재하는 듯하다. ‘더 빨리 조금 더많이’ 얻기 위해 개인 정보에서 자신의 취향, 위치 정보까지 많은 것을 쉽게 내준다. 그러니 대형마트의 구매 명세표나 스마트폰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상황으로 변해간다. 이를 막을 브레이크도 없어 보인다.
근시안성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정치도 마찬가지. 정계의 근시안성은 정치적 양극화라는 형태로 구체화된다. 정치인들은 극단적이고 수위 높은 발언과 깡통공약을 남발해 집단적인 정치색을 만든다. 문제는 이런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부작용을 부른다는 점이다.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토론과 타협은커녕 대화마저 거부한다. 심지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폭언과 협박도 이어진다.
현대인이 이렇게 즉각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바뀐 것은 모두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광고가 끈질기게 따라붙고 클릭 몇 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효율적인’ 세상이 한몫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 무한 쳇바퀴를 굴리고 있는 것이다.
충동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비록 소수이지만 근시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쇼핑 채널이 넘쳐나는 텔레비전을 거부하는사람들, 신용카드를 자르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얘기한다.
결론은 나왔다. 더 큰 공동체로 돌아가려는 개개인의 노력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스스로에게 ‘당신은 지금 즉각적인 만족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근시사회가 조금이라도 늦춰지거나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근시사회
폴 로버츠 지음 |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392쪽 | 1만8000원
글 · 윤융근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