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는 출판사에 바둑판이 있었다. 문인들의 바둑대회도 화제가 됐다. 소설가 이문열, 김성동 선생이 바둑을 잘 두었다. 특히 김성동 선생은 뛰어난 바둑소설인 〈국수〉를 집필하기도 했다. 출판사 사장과 저자가 바둑을 두는 사무실은 인쇄를 막 마친 신간의 잉크 냄새와 함께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신간을 앞에 두고, 필자와 편집자가 바둑판을 마주하고, 흰 돌과 검은 돌이 조용히 놓인다. 원고에 대한 얘기, 출판 시장에 대한 얘기 등등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그날 바둑의 승패에 따라 서로 막걸리나 소주를 사기도 한다.

내가 편집자로 근무했던 출판사에서 〈객주〉의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옥고를 받아 책을 만들고 인세를 봉투에 넣어 드린 날이었다. 그때 김주영 선생이 웃으면서 사장에게 “야, 내가 강태형이 호주머니에서 돈 빼내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사장이 “아이고 선생님, 무슨 말씀을. 옥고를 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라며 서로 엉거주춤 서 있던 다감한 기억이 난다. 그들 사이에 바둑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눈물겹다. 이제는 원고가 이메일을 비롯해 컴퓨터로 오가고 바둑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인세도 분기별로 정확하게 판매 부수에 따라 자동 이체되고, 필자와 편집자도 이메일이나 전화로 원고 상태를 확인하고 만다. 이미 인간은 감정이 사라진 인공지능, 즉 기계처럼 변하고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 덕분에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 인간 두뇌와 인공지능의 대결, 기계와 사람의 대결 등등 바둑 한 판을 두고 미래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 낙관적인 전망이 오고 간다. 필자도 모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이제 이 요란한 이벤트는 끝났다. 인공지능 알파고 덕분에 바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구글의 마케팅 능력이 높게 평가되는 모양이다.
지금 나는 오랫동안 방치된 바둑판을 물걸레로 닦고 있다. 바둑판을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스무 점을 깔고 둬도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알파고는 역대 고수들의 기보만 입력돼 있을 뿐 그 기보에 얽힌 추억과 감정이 없다. 이세돌은 바둑과 얽힌 수많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정이 있다. 알파고는 아무런 표정도 없고 추억도 없고 심지어 얼굴도 없다.
물론 이런 사항들이 승패와는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이다(물론 앞으로는 인간처럼 생긴 로봇이 나올 것이지만). 나는 이제 인간과 기계가 ‘다른’ 점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계와 겨루어 이기는 데 눈이 멀어 기계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인간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순간 인류의 역사는 끝날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신을 만들었다. 신에게는 선악도 승패도 없다. 신에게 없는 능력이 절묘한 인간의 능력이고 가치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제 인간이 인간을 버리고 신이 되려고 한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신이 악마인지 천사인지 알 수 없다.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이것이 무섭다. 나무 바둑판을 마주하고 삶과 인생의 가치, 사람들의 온정이 오가는 세상이 바로 기계가 이길 수 없는 진짜 삶의 승부처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고 이렇게 달려가는 것일까? 왜 쓰러질 것을 알면서도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는가? 위암에 걸려 제 살덩어리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산해진미를 즐기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승패로 바둑을 길들이려고 하지 말라. 승패는 바둑의 결과일 뿐이다. 승자가 패자가 되기도 하고, 패자가 승자가 되기도 하는 인생의 이치일 따름이다. 승패는 삶의 일부분인 뿐, 당신은 인간이다. 그것을 명심하자.
글 · 원재훈 (시인) 201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