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의 첫날 나눠주는 강의계획서에 어떤 경우라도 지각, 결석을 두 번 이상 할 경우 F학점을 준다고 적어두었고, 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과제물도 기한을 넘기면 아예 받지 않는다. 종강날 강의실 복도에 예닐곱 분의 학부모와 오토바이 택배기사가 과제물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수강생들의 연락을 받고 황급하게 달려온 어머니 얼굴에 "정말로 성격 안 좋은 교수가 다 있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환한 얼굴로 과제물을 받는다. 이러다 보니 강의평가서에는 "조폭 교수는 지구를 떠나라"라는 등 별별 비난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강생은 이런 나의 방침을 이해해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그들만의 카페에 내 강의가 '강추' 과목 윗자리를 차지한다고 들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도 원칙주의자였다. 하루는 아내가 시장에 가려는데 아이가 울면서 매달리자 "시장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저녁을 해주겠다"고 구슬린다. 시장을 다녀온 아내는 난데없는 돼지 비명을 듣게 된다. 증자가 뒷간에서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울면서 만류했지만 "신뢰가 없으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며 주저 없이 멱을 땄다. 원칙 준수는 강의나 아이 교육뿐 아니라 국가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그토록 신비하게 생각하는 로마제국의 천년 영화도 따지고 보면 상황 논리에 기댄 재량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하는 법의 지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은 실제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핀 키들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콧은 1977년 '재량보다는 원칙(Rules Rather than Discretion)'이라는 논문에서 비록 정직한 정부라 하더라도 융통성보다는 원칙을 지킬 때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왜 재량보다는 원칙이 먼저일까? 그것은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거래나 계약은 거래 당사자 간의 신뢰를 필요로 한다. 거래는 신뢰 수준과 같은 거래비용의 영향을 받는다. 원칙 준수는 거래비용을 낮추지만 재량은 반대로 거래비용을 높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중심 국가가 됐다. 정치적으로도 아시아 최고의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섰다. 그러나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원칙이 먹히지 않는 저신뢰사회라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회적 자본 지표는 가장 바닥권이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현금이 든 지갑을 분실할 경우 돌아올 확률이 북유럽 국가에 비해 4분의 1에 그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같이 된 데는 그동안 정책의 잘못도 상당하다. 값을 올리지 않는다고 강조하면 얼마 뒤 인상되고, 개발계획이 없다고 발표하면 얼마 뒤 개발 청사진이 발표되곤 했다. 참으로 오랫동안 그래왔고, 그래서 정책 발표를 반대로 알면 된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등장했다.
하버드대학에 '사와로 연구소'라는 권위 있는 사회적 자본 연구소가 있다. '사와로'는 애리조나와 텍사스 일대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이름이다. 이 선인장은 사막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구실을 한다. 어떤 선인장의 수명은 그렇지 않은 선인장에 비해 수명이 매우 길다.

지상으로 자라는 줄기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길고 튼튼한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버드대학은 사회적 자본 연구소의 이름을 '사와로'로 붙인 것이다. 서로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사회는 튼튼하고 건강한 사회로 발전할 수 없다. 모두가 사회적 자본에 대해 고민해볼 때다.
글 ·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언론학·매체경영) 201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