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뮤지션 삼산 “그냥 빌어 막 빌어 손 모으고 입 모으고 그냥 빌어
인생 인생 인~생
북 치고 장구 장구를 쳐 (으쌰으쌰) 흘러 흘러
얼씨구나 절씨구야 돈 봐라 돈 봐라.”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공연장. 흥겨운 우리 가락에 맞춰 일본인 관객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서툰 한국말로 후렴구를 따라불렀다. 색다른 국악 랩으로 주목 받고 있는 신예 뮤지션 삼산의 공연 현장이다. 이날 삼산은 일본어로 번역된 가사를 객석에 나눠주고 흥을 이끌어냈다. 삼산의 퍼포먼스와 함께 무대와 객석은 우리 가락으로 하나가 됐다.
최근 유튜브에서 ‘코리아 리듬(Korea rhythm)’을 검색하면 국악과 우리 전통악기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조회수가 수천만을 넘은 것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국악을 배경음악으로 활용하며 한국 문화나 핫플레이스를 소개하는 콘텐츠도 늘고 있다. 한국인보다 더 국악을 사랑하는 외국인도 많다. 미국인 조슬린 클라크 씨는 외국인 최초로 가야금 산조 이수자가 됐다. 다국적 주한 외국인으로 구성된 국악밴드 ‘소리 원정대’도 결성됐다.
K-팝에 대한 세계적인 열기가 이제 ‘국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국악을 들고 국악의 대중화에 나서고 있는 삼산을 만났다. 국악의 문법을 깬 삼산식 음악은 우리에게도 다소 낯설다. 해금, 가야금 등 전통악기에 전자악기가 섞이고 분명 국악 리듬인데 타령인 듯 랩인 듯 헷갈린다. 잔잔하면서도 흥이 넘치고 솔직한 감정을 국악으로 풀어낸 리듬은 중독성이 있다. 자작곡인 그의 노래 가사들은 세대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해학적이면서 위트가 넘친다. 현실을 담은 노래들로 말하듯 노래하는 가수 장기하에 빗대 ‘국악계의 장기하’로 불리기도 한다. 삼산은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뮤즈온’의 아티스트로도 선정됐다. 해금 케이스 끝자락에 ‘돈’, ‘성공’, ‘명예’가 적힌 키링을 줄렁줄렁 달고 등장한 삼산은 노래만큼이나 독특해보였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국악이다. 국악을 좋아하는 부모님 영향을 받아서 전통악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레 초등학교 때 가야금을 배우고 중·고등학교 때는 해금을 전공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에 진학해 예술사(학사)를 거쳐 전문사(석사) 과정까지 공부했다. 하지만 학교는 순수예술계통 음악의 비중이 크다 보니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부에 흥미도 떨어지고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구석에 처박혀 혼자 곡을 끄적이곤 했다. 그런 감정과 감성이 ‘삼산 음악’의 시작이었다.
활동명인 ‘삼산’은 무슨 뜻인가? 뮤지션으로서 성공을 위해 지은 이름이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고향에서 호를 따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고향이 전남 해남군 삼산면인데 거기서 활동명을 따왔다.
음악을 포기하려 한 적도 있다고. 누구보다 음악을 잘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딱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두자고 생각해 만든 곡이 ‘모르겠어’라는 노래였다. 그런데 그 곡이 뮤지션으로 본격 활동할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노래가 됐다. 노래를 완성한 후 그냥 그만두기는 아쉬워서 상금이나 타자는 생각으로 2022년 신진 국악인 발굴 오디션인 ‘청춘열전 출사표’라는 대회에 나갔다. 국악기로만 창작을 선보이는 대회인데 거기서 덜컥 은상을 받았다. 이후 내 노래가 알려지고 ‘정답’이라는 첫 앨범으로 2023년 정식 발매까지 하게 됐다. 음악을 내려놓으려고 만든 노래 덕분에 결국 노래를 계속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첫 앨범 제목처럼 자신의 음악에 ‘정답’이 생겼나? 데뷔 후 정신없이 살며 딱 작년까지는 ‘뭔가 좀 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또 모르겠다. 뭔가 내 인생이 잘되는 것 같으면서도 한 해가 지나니 또다시 의문이 든다. 지금 당장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음악과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거다. 적어도 내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작곡한 노래의 가사를 보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모든 노래에는 내가 닮겨 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니 그 돈을 벌써’라는 곡은 돈이 조금 미워서 쓴 곡이다. 나는 왜 돈이 없을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곡이 나왔다. ‘흥부가’에 나오는 ‘돈타령’에 공감이 가 참고하기도 했다. ‘줄줄줄 팍팍팍’이라는 노래는 대학시절의 이야기다. 과제가 워낙 많다 보니 밤샘작업을 자주 했는데 너무 피곤해 헛소리가 ‘줄줄줄’ 나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피곤함’은 남녀노소 공통이지 않나. 본질적으로 나 자신을 잘 알아야 좋은 곡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삶에 가장 가까운 내 노래는 ‘짜피죽음’이라는 곡이다. 요즘 누군가의 죽음을 듣고 내 삶은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잘 즐기고 쫀득하게 살아갈지 고민 중이다.
‘짜피죽음’의 가사를 보면 ‘탄생부터 의문인 곳에서 하나 딱 확실한 건 죽음’이라고 정의하고 ‘창피했던 일도, 앞이 깜깜한 사건도, 나를 괴롭히는 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기필코 사라질 것’이라면서 그러니 ‘이순간은 찰나일뿐 다 흘러가, 아무것도 아닌 거야’라고 위로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고 반복해 말하는 그의 노래는 그래서 현재의 삶을 더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이렇듯 삼산의 노래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놓지 않는다.
곡을 만드는 본인만의 루틴이 있나? 곡을 쓸 때 마치 토하는 마음으로 쓴다. 사람이 언제 토를 하는지 생각해보면 무엇인가 엄청 먹어서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을 때지 않나. 나도 그렇다. 내 경험을 쭉 담아두다가 어느 순간 이걸 노래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토해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 같다. 아이디어도 꾸준히 기록하는데 다분히 일상적인 것들이다. 최근에 메모한 것 중에 하나를 보여주자면 ‘나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럼 그냥 앉아야지, 아님 누워버리든가’ 등의 식이다. 좀 어이없고 웃기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꽤 진지하다.
‘뮤즈온 아티스트’에도 선정됐다. 2024년 총 10개 팀이 뽑혔는데 뮤지션으로서 한층 더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예능방송과 라디오에도 출연해보고 타 뮤지션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특히 작년 11월에는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 ‘비킨 시부야(BiKN SHIBUYA)’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현지 일본인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일본어로 번역된 가사지를 배부하고 해금 등 전통악기를 활용해 노래를 불렀다.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니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확실히 이해한 듯한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삼산 음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목표는 할부 없이 자동차를 체크카드로 사는 거다. 딱 지금 청년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공 포인트가 아닌가. 내가 열심히 노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삼산으로서 가장 큰 목표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을 해보는 거다. 뮤지션이다 보니 사람들이 엄청 많은 장소를 좋아한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야구나 보러 가라’고 놀리곤 하는데 꿈은 크게 갖는 것이라 배웠다. 80세까지 현역 뮤지션으로 활동할 계획인데 그전에는 한 번 갈 수 있지 않겠나.
개인과 삼산을 분리해서 생각한다고 느껴진다. 삼산은 음악으로 가득 찬 자아,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자아다. 작년까지는 삼산에 비중 있는 삶을 살다 보니 나라는 자아가 많이 힘들어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삼산으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야 삼산도 건강히 음악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음악가, 예술인 중 롤모델을 뽑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더 크다. 건강한 정신과 마음으로 대중에게 ‘삼산 음악’을 마음껏 선보이고 싶다.
K-팝 열풍과 함께 국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리 국악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역설적이지만 반드시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 역시 국악적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대중음악을 지향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반드시 대중성을 의도하고 노래를 만들지는 않는다. 내게 애초부터 ‘대중’이라는 것은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다. 요즘에는 K-팝도 오히려 다양성이 중시되는 추세지 않나. 결국 K-팝도 차별점이 있어 세계화에 성공했다고 본다. 국악 역시 국악만이 가진 다양성 속에서 대중성이 발현되리라 믿는다.
백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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