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첫 개발시험비행 조종사 정다정 중령(진) K-방산의 역사를 새로 쓸 한국형 전투기 ‘KF-21’이 2026년 연말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다. KF-21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국방과학연구소, 방위사업청 등 민·관·군이 협력해 설계부터 개발까지 우리나라 독자기술로 완성한 4.5세대 스텔스 전투기다. KF-21 개발로 우리나라는 세계 여덟 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이 됐다.
2022년 7월 19일 최대속도 마하 1.8(2200㎞/h)로 창공을 가르며 첫 시험비행에 나선 이후 KF-21은 2000번에 가까운 시험비행을 통해 미래 전장에 적합한 전투기로 완성도를 높여왔다. 공중급유·공대공(공중전) 유도발사 시험비행, 저온·결빙 등 극한 상황 작동 테스트를 하고 비행 중 엔진을 일부러 꺼 조종 불능 상태로 만드는 등 전투기가 설계대로 기능하는지를 끊임없이 검증했다. 전투기는 항법 장치와 다양한 센서 등을 가진 민감한 무기라 지상에서의 시뮬레이션만으로는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비행을 통한 데이터 확보가 필수다.
이처럼 극한의 조건에서 전투기의 안전성과 운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역할은 개발시험비행 조종사의 몫이다. 현재 공군 제281시험비행대대에서 KF-21의 시험비행 조종 자격을 갖춘 조종사는 총 8명이다. 공군 조종사 가운데서도 정예 요원들로 꼽히는 이들이다. 정다정(39·공군사관학교 57기) 중령(진)은 이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는 2009년 소위 임관 후 공군의 주력 전투기 중 하나인 KF-16 조종사로 근무했다. 2019년에는 여군 최초로 개발시험비행 조종사 교육 과정에 선발됐다. 20개월간의 국내외 비행 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2024년 8월 KF-21 시험비행 자격을 획득했다.
그가 수많은 병과 중 전투 조종사를 택한 것도 모자라 ‘극한 직업’으로 불리는 개발시험비행에 지원한 이유는 뭘까? 2025년 말 KF-21 개발시험비행이 한창인 경남 사천시에서 만난 정 중령(진)은 “외산 전투기는 요청 사항에 피드백이 빠르지 않고 반영되는 건 그보다 더 느려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며 “개발 단계부터 우리의 생각을 녹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조종사들에게 최적화된 기체를 개발하고 싶다는 바람이 그를 시험비행으로 이끈 것이다.
전투기 4기 지휘해도 쉽지 않은 길 개발시험비행 조종사는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자격이 있다. 4대의 전투기를 지휘할 수 있는 4기 리더거나 70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쌓아야 한다. 전투기는 두 대가 함께 움직이는 2기 기동이 기본이다. 4대로 작전을 운영한다는 건 전투기 4대의 위치와 개별 무장 상황 등을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구상이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 중령(진)은 “전투 조종사로서의 기본 능력을 갖추면 개발시험비행 조종사가 될 수 있다”면서도 “거기에 더해 기체를 원하는 상태로 유지하면서 항공기의 기동이나 성능이 전투 조종사들의 작전 환경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개선점은 없는지 등을 파악하고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1300시간의 비행 경험을 가진 그에게도 개발시험비행 조종사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은 그도 이 부분에선 말이 길어졌다. 그는 “한 대의 기종에 대해서만 훈련을 받는 일반 교육 과정과 달리 짧은 기간에 여러 기종을 다뤄야 해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며 “한 기종에 대한 이론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기종의 비행 계획을 짜고 비행 결과를 정리해 발표하는 등 여러 과정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내야 했다”고 전했다.
개발시험비행 조종사 자격이 있어도 KF-21 시험비행을 위해선 기체를 이해하기 위한 학습 및 테스트를 다시 거쳐야 했다. 몸무게의 아홉 배에 달하는 중력을 의미하는 9G 상황에서 15초 이상을 버텨야 하는 조건도 있다. 경험 많은 조종사들도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KF-21 시험비행 자격을 획득한 후에도 그를 비롯한 시험비행 조종사들은 지상 엔지니어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공학 이론 등을 꾸준히 공부한다.
악천후 만나 비상 귀환하기도 2024년 9월 4일, 드디어 첫 KF-21 시험비행에 올랐다. 정 중령(진)은 “지상 엔지니어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이 비행에서 얻어야 하는 결과 값이 있고 이를 확인해야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기에 중압감이 컸다”고 말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KF-21 비행 중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를 만났다. 곧바로 기지로 돌아와야 했지만 날이 어둑한 데다 비까지 내려 활주로가 잘 보이지 않았다. 활주로 양쪽에 켜진 불빛과 현재 고도 등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며 기체가 땅에 닿을 때까지 최대한 충격을 완화하면서 착륙했다.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은 보통 비행을 하지 않지만 여름철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갑작스레 맞닥뜨린 위험이었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임에도 정 중령(진)은 “위험한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로펠러 훈련기 KT-1 개발시험비행 과정에선 몇 차례 사고가 나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비상탈출 기능이 작동해 조종사가 아무 대비 없이 항공기를 벗어난 적도 있고 항공기의 지붕 역할을 하는 캐노피가 날아간 적도 있다. 사고의 위험을 안고 활동하기에 개발시험비행 조종사들은 유사시에 대비해 머리카락을 따로 모아놓는다.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지구 표면에서 약 15㎞ 떨어진 5만 피트 상공의 하늘은 지상에서 보는 하늘이 아니다. 깊고 어둡다. 해당 고도는 우주 공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는 “임무를 수행할 때는 경주마처럼 집중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지만 귀환할 때는 보지 못한 풍경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 중령(진)이 경험한 KF-21의 경쟁력은 어떨까? 정 중령(진)은 그의 주력 기종인 KF-16과 비교해 “수동 자동차를 타다 전자식 고급 세단을 탄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전반적인 기동과 장착할 수 있는 무장, 항전 장비의 수준이 훨씬 좋다면서 “무엇보다 KF-21 탑재 무장을 무궁무진하게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행제어, 소프트웨어, 데이터 등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자국 전투기가 있으면 항공기 탑재 후 무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과정이 대폭 줄어든다. 무장 시험을 위한 시험비행도 자유롭고 전투기와 무장을 패키지로 묶어 수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실제 국방과학연구소는 2025년 12월 KF-21용 국산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 여생도의 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한 공사에서도 정 중령(진)이 걸어온 길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전체 생도를 이끄는 학생회장 격인 전대장생도로 활약했다. 공사 역사상 여생도가 전대장생도를 맡은 건 그가 두 번째였다. 백 명 중 네 명꼴인 여군 전투 조종사 가운데서도 그는 첫 개발시험비행 조종사로 이름을 남겼다. 늘 그를 따라붙는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정 중령(진)은 “소수집단이라 튈 수밖에 없어서 여자 선배들이 느낀 부담감을 조금은 느낀다”면서도 “누군가는 나를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할 수 있도록 항상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조종사들은 목·허리 디스크 등 고질병으로 고생한다. 높은 중력을 견딘 날에는 담 걸린 것처럼 근막통증증후군에 시달린다. 가족들 입장에선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정 중령(진)의 어머니도 그가 개발시험비행에 나서겠다고 하자 “꼭 해야겠냐”며 말렸지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는 그에게 결국 응원을 보내줬다. 정 중령(진)은 “내 결정을 믿어주고 지원해주셔서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상 시험이나 50시간, 100시간 주기 점검 등이 돌아올 때를 제외하곤 통상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시험비행에 나선다. 일정이 많을 때는 매일 시험비행을 할 때도 있다. 쉬는 날이면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산책한다. 요즘은 클래식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그는 임관 18년 차로 중령 진급을 앞두고 있다. 중간 지휘관급으로 올라서면 비행을 본격적으로 하는 현재와는 임무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비행이 아니더라도 우리 군과 국민을 위해 주어지는 임무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군인의 임무는 나라를 위해 나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시간에도 사천 하늘에선 전투 조종사를 꿈꾸며 비행훈련 중인 후배들의 KT-1 비행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고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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