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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많은 것이 없다. 기분 좋아지는 맑은 공기도, 길가에 건강한 강아지도 없다. 도로에 중앙선도, 교통질서도 없다. 화려한 간판도, 친숙한 언어도 없다.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건물도 없다.”
서울에서 인도 콜카타까지 4,034킬로미터. 콜카타에서 180킬로미터 떨어진 산티니케탄 지역 작은 마을. 봉사단 이름 ‘나마슈떼’. 인솔자 4명과 대학생 19명. 2020년 1월 운명처럼 주어진 14일.
봉사단 학생들의 눈에 비친 인도는 그랬다. 없는 것이 많았다. 인솔자로 참여한 나는 이 모든 게 ‘업(Karma)’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마주하고 겪어내야만 하는 것들. 감내하기 힘든 일들. 나는 인도에 있었다.
“저거 미세먼지죠?”
인도 첫날 콜카타 공항 밖을 나서며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게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미세먼지는 무슨. 어디 불난 것 같은데?”
공항 주변은 온통 잿빛이었다. 젖은 나무나 플라스틱을 태우는 것처럼 매캐했다. 이건 공기가 아니라 연기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와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 수많은 벽돌 공장과 소각장이 인도에 있었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온 시점까지, 어디를 가더라도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인도로 출국하기 전날, 짐은 줄여야 했고 수저 케이스는 필요했다. ‘KF94’라고 찍혀 있는 비닐 포장지가 보였다. 담겨 있던 마스크를 모두 뺐다. 그 빈자리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넣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그런 생각을 안 하는 이유가 있었다. 매일 콧속에서 그을음이 묻어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광산의 주인이 됐다. 애초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기려고 한 게 문제였다. 인도에서 손으로 밥을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경적을 한 번 누르면 다섯 번씩 소리가 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 가속 페달을 밟으면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인도의 도로는 인도의 축소판이었다. 사람과 동물, 바퀴가 달린 모든 교통수단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도로에 중앙선도, 교통질서도 없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경찰차가 앞에 있어도 경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도 신호 위반이 있을까요?”
내가 넋이 나간 얼굴로 묻자 언어학자인 단장님이 답했다.
“신호가 있어야 위반을 하지.”
“…….”
하늘에 닿을 듯한 아파트는 없었다. 현지 학교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았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못이 삐져나온 합판과 고무 매트를 깔았다. 밤에는 제법 쌀쌀했지만 제공 받은 침낭은 한산 모시처럼 얇았다. 다음날 아침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입이 반쯤 돌아갔다. 때때로 전기가 끊겼고 물도 나오지 않았다. 욕실이 아닌 화장실에서 씻어야 했고 위생 상태도 열악했다.
“시설이 생각보다 좋아서 감사해요.”
온종일 경적 소리에 시달려 환청이 들린 걸까. 봉사단 학생들은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찾고 있는 깨달음이 인도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갖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도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봉사단 학생들의 빛나는 눈빛을 기억한다. 소외된 아이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과 교감하는 그들을 보며 언어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사랑이었다.
도무지 아무것도 자랄 것 같지 않은 땅에 씨앗을 뿌리며, 콘크리트 숲에서 살아온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땀을 흘렸고, 인도 사람들처럼 웃을 수 없을 때 웃었다.
고된 하루가 끝난 밤. 옥상에 매트를 깔고 누운 학생들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이렇게 행복해도 돼?”
여전히 탁한 하늘에서 별이 빛나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에서 별이 빛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다.
업(Karma)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연이었다. 인도에서 봉사단 학생들은 내게 영감을 주는 시인이었고, 척박한 땅을 깨우는 농부였고,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다.
봉사단 학생들의 눈에 비친 인도는 그랬다. 없는 것은 있는 것이었다.
“인도에는 맑은 공기는 없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과 새하얀 구름이 있다. 건강한 강아지는 없지만, 목줄 없이 길가를 뛰어다니는 강아지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행복이 있다. 중앙선과 화려한 간판, 높은 빌딩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에는 순수함이 느껴졌고, 마을에는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이런 인도에 빠질 것 같다.”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