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서쪽 끝의 문명이 로마제국이었다면 실크로드의 전신인 초원길(Steppe Route)의 끝에 있는 신라는 그 당시 인류가 알던 가장 동쪽 끝의 문명이었다.
고조선 시대부터 이미 초원길을 통해 들어온 고대 로마제국의 유물들은 고구려를 거쳐 신라까지 전달됐다. 신라 고분에서 나온 로마산 유리잔이 이를 증명한다. 고대 서역의 비단 유입 경로를 연구해온 인하대 의류디자인학과 나영주 교수는“로마제국은 비단을 짜는 사람들을 세레스라고 불렀는데 고조선 연합국의 시라(尸羅)인을 지칭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시라는 신라의 고대 명칭 중 하나다.
통일신라를 10여 년 군림했던 제42대 흥덕왕은 836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10여 년 전에 죽은 부인을 잊지 못했던 흥덕왕은 장화왕비릉에 합장됐고 두 망자의 안식처는 흥덕왕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흥덕왕릉은 규모가 크고 화려해 대표적인 통일신라 왕릉으로 꼽힌다. 흥덕왕의 명으로 바다를 평정한 장보고가 활약하던 때는 해상 실크로드가 발전해서 신라가 직수입한 해외 귀중품이 일본으로 수출되던 시기다. 흥덕왕릉비에 쓰인 ‘무역지인(貿易之人)’이라는 글자는 당시 교역 상황을 보여준다.
흥덕왕릉에는 몽둥이를 움켜쥔 시원한 이목구비의 이국적인 무인상들이 울창한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굵은 옷주름과 팔근육 등 정교하고 사실성이 돋보이는 이 무인상들은 실크로드를 주름잡던 상인 소그드인처럼 보인다. 사찰 입구를 지키는 금강역사를 닮은 석인상은 통일신라 왕릉조각에서만 볼 수 있다.
역사학자인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예술적인 양식을 고려하면 범페르시아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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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