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1970년대에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크리스마스실(seal) 사는 것을 연례행사로 여겼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낼 때 영문도 모른 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우표와 나란히 실을 붙여 보낸 기억들이 있으리라. 학교에서도 크리스마스실(당시는 크리스마스 ‘씰’로 표기)을 단체로 구입해 학급별로 할당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실을 사려고 우체국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실 판매 캠페인은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된 1953년부터 결핵 환자의 치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2013년 현재도 우리나라에는 10만명당 79명의 결핵 환자가 있으며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서는 크리스마스실 판매가 급감하고 있다.
대한결핵협회의 텔레비전 광고 ‘크리스마스실’ 편(KBS 1969년 12월 10일)을 보자. 광고가 시작되면 “크리스마스실을 삽시다”라는 헤드라인이 커다란 자막으로 제시된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실을 사는 장면들이 삽입 컷(insert cut)으로 슬쩍슬쩍 스쳐가고 나면 앳된 얼굴의 사미자 씨가 등장해 이렇게 강조한다.
“여러분이 결핵 환자를 위해 사주시는 이 조그만 딱지 한 장 한 장이 무서운 결핵을 뿌리 뽑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올해에도 이 크리스마스실을 많이 사서 결핵 환자를 도웁시다.”
흥미롭게도 이 광고에서는 크리스마스실을 ‘딱지’라고 표현했다. 당시에 무서운 병이었던 결핵을 치료하는 원동력이 바로 색동옷과 무궁화문양이 그려진 딱지 한 장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또박또박 전달하는 사미자 씨의 차분한 말투는 그 시절의 시청자들에게 호소력 있는 메시지로 다가갔으리라.
크리스마스실 캠페인 광고가 처음 나온 것은 1960년 12월이다. 영화배우 최은희 씨가 ‘크리스마스씰을 삽시다’라는 캠페인 광고를 촬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1961년 12월에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엄앵란 씨가, 1967년 11월에는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던 영화배우 김지미 씨가, 1970년에는 배우 김자옥 씨가 크리스마스실 캠페인의 광고 모델이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거의 무료로 출연했을 만큼 크리스마스실 판매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 캠페인이었다. 극장에서도 영화 상영 중간에 실 판매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실과 관련해 올해 크리스마스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한결핵협회 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념해 역대 크리스마스실 ‘베스트 10’을 묶어 ‘올해의 크리스마스실’로 발행했다.
그런데도 크리스마스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안타깝다. 크리스마스실의 판매액은 2009년 57억2천만원에서 2012년 43억원으로 25퍼센트나 감소했다. 대한결핵협회가 트렌드를 고려해 ‘뽀로로’ 캐릭터나 김연아 선수를 디자인에 활용했는데도 별 효과가 없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크리스마스실 캠페인에 동참하자. 1960년대의 스타들처럼 요즘 스타들이 크리스마스실 광고에 무료로 출연한다면 어떨까. 아직도 결핵 환자들은 국민들의 사랑이 고프다.
글·김병희 (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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