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직한 지 두 달이 된 저는 100여 명의 규모를 가진 중소 정보기술(IT) 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재직 중입니다. 이전 회사는 업무 환경이나 사원들 간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성장 가능성이 작아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규모는 좀 더 작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이곳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제가 맡은 부서에는 입사 5년 차인 팀리더 A가 7명의 팀원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리더와의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A는 첫 만남부터 저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하면 대답이 아닌 면박을 줬고 회의 중에 의견을 제시하면 은근히 무시하며 저를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모르는 걸 가르쳐주는 건 잘못된 게 아니지만 직속 상관인 저에게 지나치게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팀원들과 제대로 된 식사 자리를 가져보지도 못했고 지금은 팀원끼리 모여 제 뒷담화를 하는 게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을 대표에게 보고했지만 오히려 제 리더십을 문제 삼을 뿐입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데 퇴사와 이직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일까요?
(최선우·가명, 43)
A.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이직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30대 중반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이직률은 45.5%를 기록했고 10년 차 직장인의 평균 이직 횟수는 평균 4회에 이른다는 통계청 조사도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지금 다니는 회사를 떠나겠다는 직장인이 대부분입니다. 이직률이 높아지면서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겪는 스트레스나 어색한 직장 관계에서 느끼는 소외감 등으로 불안감,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직을 결심할 때는 다니던 회사보다 더 나은 처우를 기대하거나 미래를 위한 자기계발에 더 적합한 곳을 찾았다는 희망이 있었을 텐데 생각하지 못한 상황을 겪으며 선우 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통찰력 있는 낙관론 vs 현실적인 비관론
선우 님처럼 이직한 회사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부하직원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상대가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정확한 상황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낙관론자가 될지 비관론자가 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직위가 낮은 상대가 나에게 공격적이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한 경우입니다. 자신이 그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이뤄놓은 실적과 권위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나오는 거죠. 이런 경우라면 먼저 선우 님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합니다.
선우 님이 직급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새로운 곳에서 너무 의욕이 앞서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려거나 자기만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상대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선우 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상대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춰야 하는 대화의 과정이 내키지 않을 수 있지만 오히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로 삼고 불편한 비판마저 수용할 수 있을 때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영국의 정치가 처칠의 말처럼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낙관론자가 될 필요가 있는 거지요.
두 번째는 상대가 나에게 ‘사냥 본능’을 표출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나에게 문제가 있거나 상대가 자신이 이뤄놓은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비뚤어진 폭력성에서 비롯된 경우입니다. 상대의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 직급이 높은 상대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깔보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럴 때는 비관론자가 돼야 합니다. 나의 배려와 공감이 관계를 좋게 할 것이라는 희망 대신 잘해줄수록 나를 이용하고 무례하게 굴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상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신뢰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되 최대한 비판적이고 냉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함부로 대하는 부하직원의 말과 행동에 신경 쓰지 않고 반응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선을 넘는 상대에게는 규범과 업무 매뉴얼에 따라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선우 님이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줘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선우 님과 교감할 수 있는 동료를 찾아야 합니다. 인성이 나쁜 사람은 선우 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도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적이 많은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런 노력에도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계속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퇴사와 이직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마지막 카드입니다. 직장 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황과 상대에 맞게 낙관론과 비관론을 조율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통찰력 있는 낙관론은 나를 성장시키는 날카로운 창이 되고, 현실적인 비관론은 나를 지키는 방패가 돼 위험을 예방하고 대처하게 합니다. 창과 방패를 잘 다룰 수 있을 때 직장에서의 성공적인 관계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신기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인드풀링(Mindfluing) 대표이자 ‘신기율의 마음찻집’ 유튜브를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모임인 ‘그루맘’ 교육센터장이다.
*독자 여러분의 상담 신청을 받습니다. 신청은 giyultv@gmail.com으로 보내면 됩니다. 채택된 사연은 ‘신기율의 마음 상담소’ 지면을 통해 상담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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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