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호도(20세기 초) 우석 황종하(1887~1952)의 그림이다. 호랑이 그림은 예로부터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많이 그렸다.
호랑이에 얽힌 이야기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가 시작됐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서 12지지 동물 이상의 매력을 뽐냈다. 멀리는 단군신화의 호랑이부터 가까이는 1988 서울올림픽의 ‘호돌이’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수호랑’까지.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늘 호랑이가 등장했다. 호랑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 호랑이 편>과 특별전 <호랑이 나라>를 통해 알아본다.
방대한 호랑이 흔적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 120여 년 전에 출간된 비숍의 여행기 기록에서 보듯 예전에는 호랑이가 민가에 자주 출몰해 가축이나 사람을 해칠 정도로 그 개체수가 많았다. 호랑이와 관련해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1000여 건의 설화를, <조선왕조실록>에서는 700여 건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술과 기록으로 대표되는 두 문헌에 나타난 방대한 호랑이의 흔적은 오랫동안 호랑이가 우리의 삶과 함께 했다는 증거다.
▶십이지신도-인신(1977) 불법을 수호하는 호랑이 신장 그림이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이지신도는 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해당 방위에 걸어 잡귀를 막는 역할을 한다.
예로부터 산신령으로 불리던 동물
단군신화에서 환웅의 배필 자리를 놓고 호랑이와 곰이 경쟁을 벌여 곰이 승자가 됐다. 그러나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곰보다 월등하게 많이 등장한다. 이는 구술과 기록에 나타난 수많은 호환의 흔적으로 유추하건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호랑이는 우리 문화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호랑이를 신으로 삼고 제사를 지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 호랑이를 산군이라 부르며 무당이 진산에 도당제를 올린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 등 호랑이는 우리 땅에서 산신, 산군, 산신령 등으로 불리며 신으로 섬겨졌다.
전시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은산별신제에서 썼던 산신도’를 비롯해 초창기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가 일제강점기에 수집한 ‘산신도·산신당 흑백사진’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호랑이를 산신으로 섬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산신도(1890년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지내는 은산별신제에 사용하였던 산신도이다.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신으로 좌정하거나 산신을 보좌하는 동물로 나타난다.
대문 위에 걸린 호랑이
예로부터 호랑이는 그림이나 부적 등에 새겨 나쁜 기운, 즉 액을 막는 벽사의 수단으로 쓰였다. 새해 첫날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이는 세화, 단오에 쑥으로 호랑이 형상을 만드는 애호 등은 모두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풍속이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열양세시기>에서 세화와 애호의 풍속을 확인할 수 있고 더불어 삼재를 막기 위해 만든 ‘삼재부적판’, ‘작호도’ 등을 통해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막고자 했던 조상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까치호랑이’라고 풀어 부르는 ‘작호도’는 대문 양쪽에 호랑이와 용을 그려 붙이는 ‘용호문배도’와 함께 문배 그림 중에서도 인기 있는 소재였다. 이번 전시에는 두 점의 ‘작호도’를 선보인다. 한 점은 까치에게 강퍅하게 성을 내는 호랑이의 모습이고 다른 한 점은 바위 사이를 날렵하게 뛰어넘는 표범의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줄무늬범과 표범을 모두 호랑이로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신부가 타는 혼례용 가마 위에 호랑이 가죽을 덮었다. 호랑이의 위용을 빌려 먼 거리를 무사히 이동하길 바라는 기원이다.
▶작호도(19세기) 호랑이와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를 소재로 그렸다. 각기 호랑이는 벽사와 보은, 소나무는 장수, 까치는 기쁨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호랑이와 까치를 강자와 약자에 비유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 국립민속박물관
호환 방지 범굿
동해안 지역에서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해 ‘범굿’을 지냈는데 대표적으로 포항의 ‘강사리 범굿’을 들 수 있다. “이 범을 잡아야 될 거라야 그놈 참 머 험하기도 험하다”라는 무가(巫歌)로 시작해 “옛날에 모두 옛 조상들데 논 이 호랑이굿을 이래 불러주고 위해줍니다”라는 무가로 범굿을 마치는데 이를 통해 호환의 두려움과 오래전부터 범굿이 전승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굿’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김수남(1949~2006)이 1981년에 촬영한 강사리 범굿의 사진을 슬라이드 쇼 형태로 소개한다.
▶강사리 범굿의 호랑이(1981) | 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나라!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개최는 우리 역사에 딱 두 번 있었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도, 30년 뒤 평창올림픽에서도 마스코트는 호랑이였다. 또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유니폼에는 호랑이가 엠블럼 형태로 부착돼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있다.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모두 이번 전시에 선보이며 ‘2002년 한일월드컵 기념 축구공’,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기념 티셔츠’ 등을 통해 여전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로 위상을 떨치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심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