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제3호>쌀시장 개방 파고 넘는다
- 작성일
- 2005.03.30
[SET_IMAGE]1,original,center[/SET_IMAGE]정영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무역기구(WTO)의 147개 회원국 모두 참가하는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과 한국 쌀시장에 대해 관심을 갖는 미국, 중국 등 9개 이해당사국과의 쌀 협상 등 농산물시장의 추가 개방을 둘러싼 두 가지 힘겨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문에 따라 UR 이행 기간 종료 1년 전인 1999년 후속 협상이 시작됐다. 이어 2001년 11월 DDA 출범과 함께 그 일환으로 편입된 DDA 농업협상은 수출국과 수입국,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첨예한 이해대립으로 애초 예정보다 크게 뒤늦은 지난 8월1일 새벽 제네바에서 협상 세부원칙(modality)의 기본 골격(framework)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이제부터 협상 1단계에 해당하는 세부원칙 협상에 본격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DDA출범에 즈음한 도하각료선언문은 농업협상의 목표를 ▷시장 접근의 실질적 개선 ▷수출 보조의 폐지를 목표로 한 감축 ▷무역왜곡적 국내 보조의 실질적 감축 등에 두고 있어 UR에 비해 훨씬 큰 폭의 시장 개방과 국내 보조의 삭감이 추구되고 있으며, 최근 합의된 협상 기본골격에도 세계 농업의 시장지향적 개혁 추진이라는 장기적 목표가 반영돼 있어 우리 농업의 구조조정 가속화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앞으로의 협상 일정은 세부원칙 결정, 각국의 이행계획서(C/S : Country Schedule) 제출, 이행계획서에 대한 검증 등 3단계.
그러나 이러한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에도 애초 예정에 비해 2년 이상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WTO 체제의 붕괴 우려 때문에 협상 자체가 와해될 가능성은 매우 작은 것으로 보인다.
[B]시장원리와 쌀의 다원적 기능 조화가 관건[/B]
한편 쌀 협상은 UR 농업협정의 관세화(tariffication)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받아 지난 10년간(1995~2004년) 관세화 적용이 유예됐던 한국 쌀에 대한 유예기간 연장 문제를 둘러싼 이해당사국과의 조건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UR 농업협상에서는 모든 농산물의 국경보호장치는 관세만 남기고 수입 수량 제한 등 비관세 장벽은 폐지한다는 관세화 원칙에 대한 예외조치를 한국, 일본, 이스라엘, 필리핀의 쌀 등 극소수 특정 품목에 한해 허용한 바 있다. UR 농업협정문은 이들 관세화 유예 품목들에 대해서는 특례조치의 대가로 의무수입 물량을 뜻하는 최소시장접근(MMA : Minimum Market Access) 물량을 일반 기준에 비해 늘리며, 이행 기간의 마지막 연도에 유예 기간 연장여부를 이해당사국들과 협상하고 그 결과를 WTO 전 회원국으로부터 검증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유예 기간을 다시 연장하는 경우 협상상대국이 수용할 수 있는 추가 양보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UR 당시에 관세화 유예 조치를 적용받았던 국가 가운데 일본은 MMA 증량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행기간 종료를 2년 앞둔 1999년, 이스라엘은 이행기간 종료와 함께 2000년에 각각 관세화로 이행했으며 2001년 WTO 가입 당시 관세화 유예를 원용했던 대만도 이듬해에 관세화로 전환함으로써 WTO 전 회원국 가운데 관세화 유예 연장을 위한 협상을 해야 하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 두 나라뿐이다.
그러나 필리핀은 국내정치적 요인이 있을 뿐 경제적 측면에서는 관세화를 하더라도 국내외 가격차로 인한 타격은 거의 받지 않을 상황이어서 한국은 쌀문제에 관한 한 WTO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예외로 남아 있는 셈이다.
우리 농업의 최대 현안인 쌀 협상은 7월까지 이해당사국들과 개별적으로 가졌던 탐색전 성격의 1~2차 접촉에 이어 8월부터 가장 중요한 협상 상대국인 미국, 중국과 3~5차 접촉을 통해 유예 기간 연장 조건에 관한 기본 입장을 주고받는 구체적 논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협상의 쟁점은 유예 기간, MMA 증량 수준, MMA 관리 방식 및 쌀 이외의 다른 품목이나 현안과의 연계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유예 기간에 관해 우리나라는 현행대로 10년을 요구하고 있지만 상대국들은 이보다 훨씬 짧은 기간을 제시해 커다란 의견차가 있으며, 유예 기간이 짧은 경우 현재의 DDA 진행 상황과 결부시켜 볼 때 유예의 실익이 크게 훼손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MMA 증량 수준 및 관리 방식에 관해서도 일부 상대국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확대 요구가 제시되고 있고, 모든 상대국이 자국의 시장 지분 보장과 수입쌀의 시중판매를 요구해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밖에 많은 상대국들은 쌀 이외의 다른 관심품목이나 검역, 규격 등 제도에 관련된 갖가지 요구를 내놓고 있고 협상 상대국 간의 의견차이도 적지 않아 9월중 협상 타결, 연내 WTO 회원국 검증 완료라는 애초 일정을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협상의 막바지 단계에 가서 정부가 당초의 공식 입장인 관세화 유예 방침을 끝까지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관세화 전환을 통해 유예 연장에 따른 추가 부담을 회피하면서 국내 쌀산업 유지 발전을 위한 어떠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쌀 협상에서 정부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것은 DDA 농업협상의 세부원칙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세화로 전환하는 경우와 쌀 협상을 통해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는 경우의 득실을 정확히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정책의 선택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임을 감안할 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향해야 할 정책목표와 비전의 설정이다.
현시점에서 우리나라 쌀 정책이 지향해야 할 기본 방향은 WTO 농업협정의 포괄적 관세화 원칙에 대한 유일한 예외국이라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탈피하고 쌀산업을 한층 시장원리에 접근시키면서 벼농사가 지닌 다원적 기능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쌀 수급과 가격 형성을 시장 기능에 맞도록 전환해 나가는 동시에 쌀농업의 경영안정 및 쌀농가에 대한 소득 보전을 내실있게 추진해 나가는 두 가지 정책과제를 동시에 풀어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대외적으로는 끝없는 국익추구라는 국제통상협상의 냉혹한 현실에서 더욱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국내적으로는 지난 10년 동안 악화일로를 걸어온 ‘쌀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실천에 옮기지 않고서는 고질적인 악순환 구조를 깨뜨릴 방법이 없다.
[B]EU 농정개혁안 눈여겨봐야[/B]
우리가 현 단계에서 시급히 착수해야 할 정책 전환의 선례로는 UR 농업협상 타결을 앞두고 유럽연합(EU)이 1992년에 결정했던 공동농업정책(CAP : Common Agricultural Policy) 개혁과 DDA 출범을 앞둔 1999년에 실천에 옮겼던 ‘아젠다 2000’의 농정개혁을 들 수 있다.
EU는 UR 타결을 앞둔 시점에서 역내 농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곡물가격을 약 30% 가까이 대폭 인하하고 그에 따른 생산자 손실을 전액 보상해 주는 소득보전 고정 직접지불제의 일정기간 도입 등을 핵심내용으로 한 CAP 개혁을 이룩했으며, 뒤이은 아젠다 2000에서도 DDA 출범과 EU 확대에 대비한 사전포석으로 역내외 가격차를 축소하는 등 추가적인 개혁 조치를 도입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지난해 11월 참여정부가 확정한 119조 원 규모의 농업농촌종합대책을 통해 농정 전환을 위한 재정적 토대를 마련한 바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의 과제는 시장지향적 쌀 정책의 전환과 정책 전환에 따른 농가 소득보전 및 규모화된 농가의 경영안정대책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쌀 정책 전환의 전략 측면에서는 현재까지와 같이 농민들의 불신만 심화시키는 지나치게 실무적 접근에서 벗어나 앞으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쌀농업의 구조조정 기간(예컨대 10년)에 예견되는 쌀값 하락을 현 수준에서 보상해 줄 ‘정액 소득보전 직불제’의 도입과 같은 가시적이며 확신을 심어주는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쌀문제를 둘러싼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쌀 협상은 전문가의 최선의 노력에 맡기고 우리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좌우할 수 없는 협상 결과를 냉철하게 수용하면서 WTO 농업협정의 틀 속에서 우리 쌀을 지켜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정책 패키지의 개발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에 모든 지혜를 모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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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쟁점1 관세화 VS 관세화 유예[/B][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
코리아플러스 : 쌀 협상을 둘러싼 논쟁 중 핵심은 관세화냐, 관세화 유예냐입니다.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만….
윤장배 : 이번 쌀 협상에는 모두 9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나라마다 입장이 다릅니다. 관세화 유예에 관심을 갖는 나라가 있고, 관세화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협상에 임하는 우리 정부 협상단은 일단 관세화 유예기간 재연장을 목표로 하는데, 이는 농업의 안정성을 확보한다든지 농업 발전의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경우 협상국의 요구 수준이 다소 높은데, 이를 최대한 낮추는 전략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습니다.
서정의 : 쌀이 관세화로 개방되면 민간 유통 기능이 취약한 상태에서 중국, 미국 등의 저가미는 국내 식당, 고급미는 중산층 이상의 시장을 장악해 3~4년 내에 국내 쌀 산업이 붕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를 기본 입장으로 정했다고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상대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관세화 유예를 했을 경우 수입 물량과 그로 인한 피해가 관세화때보다 클 경우 관세화 결정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습니다. 정부는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 관세화 유예를 재연장하고 의무수입물량(최소시장접근, MMA)과 반입 조건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해줄 것을 주문합니다.
윤장배 : 현재까지 협상을 통해 관세화 유예에 대한 나라별 요구 조건은 상당부분 구체화되었지만 유예 기간, 저율관세의무수입량(TRQ) 증량 수준 등 유예조건에서 상대국과 우리의 안에 현저한 입장차이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관세화로 갈 것이라는 우려는 이해합니다만, 그에 대한 최종 입장은 각국의 요구와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진행 동향 등에 대한 면밀한 비교평가를 통해 결정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 시기를 예단하기 힘듭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쌀 협상에서 정부의 원칙은 일단 관세화 유예를 관철하는 것입니다. 좀더 지켜봐 주십시오.
서정의 : 국제적 협상이기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최소한 농민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협상안을 만들고 협상 과정에서 상대국의 요구 조건 등 정보를 공유하고 사전에 충분히 해법을 함께 모색할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쌀 협상과 관련해 농민들의 요구는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내 쌀 산업의 여건상 MMA가 현 수준인 4%를 넘을 경우 재고 관리 등 수급 조절도 어렵고 그에 따른 쌀값 하락이 예상됩니다. 또 수입물량에 대해서는 민간시장 접근을 차단하고 가공용으로만 그 용도를 제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수입물량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윤장배 : 현 상황에서 관세화냐 관세화 유예냐의 논쟁은 다소 소모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양자 중 어떤 것이 국익에 비추어 더 유리하냐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비교분석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다만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고 또 각 변수가 유동적인 상황이어서 현 단계에서 유불리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곤란합니다. 분석 결과의 공개 여부 및 시기는 협상 전략상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할 것입니다.
[B]쟁점2 농가 소득보전 대책은 충분한가[/B]
서정의 : 농민이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는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10년 동안 진행된 농민의 척박한 삶에 기인하는 겁니다. 농민은 극빈자 다음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당시에도 정부는 개방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게 뭐 있습니까. 문제는 쌀 협상이 단순히 농민들만의 문제라거나 농림부가 혼자 떠맡을 짐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 그리고 온 국민의 공감대, 국민적 합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그런 것이 결여돼 있다는 생각입니다.
윤장배 : 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현재보다 추가 개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정부는 추가 쌀시장 개방에 대비해 우리 농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데 농민이나 농민단체에서 볼 때 다소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추가 개방으로 인한 농가 소득의 감소 부분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정의 : UR 협상 이후 농민의 실질소득 보전이 안된 경험이 있어요. 개방으로 인한 피해를 직불로 보전하는 계획이라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그러한 계획을 유지하면서 시행할 의지가 과연 현 정부에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정부는 나름대로 여러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과거처럼 또 흐지부지될 것 아니냐는 불신이 깔려 있어요. 그리고 농민의 소득보전을 마치 농민 개개인을 먹고 살게 해 주는 ‘혜택’으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기반인 농업 분야에 투자한다고 봐야죠. 농촌이 붕괴하면 결국 국가도 황폐화하는 것 아닙니까. 소련이 붕괴한 것도 결국 식량부족 문제가 컸거든요. 농업을 단지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대책에도 소홀한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휴대전화 많이 판다고 쌀 대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윤장배 : 농민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부는 이미 지난 2월 범정부적 합의하에 농가 소득 및 경영 안정 대책의 기본틀을 마련했고요. 또 현재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전문가 및 농민단체 등과 협의중입니다. 2004년 말까지는 구체적 계획이 확정될 것 같습니다. 정부가 현재 검토하는 쌀농가 소득안정 방안은 개방 전 쌀농가 소득을 보전할 수 있도록 목표수준을 설정하고 이 수준과 당년 가격차이의 상당부분을 고정형과 변동형 직불로 보전하는 것입니다. 이는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쌀농가의 소득이 보전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현행 논농업직불제와 쌀소득보전직불제의 내실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논농업직불제는 WTO에서 허용하는 생산 가격과 연계되지 않는 고정형 직불제로 개편하고 쌀 소득보전 직불제는 개방에 따른 소득 감소액의 일정수준을 보전하는 변동형 직불제로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직불 예산 비중을 2004년 8.4%에서 2008년까지는 23% 수준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입니다.
[B]쟁점3 전업농 육성 통한 규모화, 대안인가[/B]
코리아플러스 : 정부는 농촌의 체질 개선을 위해 6ha 이상의 전업농 7만 가구를 장기적으로 육성하겠다고 하는데요. 규모화가 현재 농업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나머지 중소농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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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 지금까지 우리 농촌을 지킨 것은 전업농이 아닌 가정농과 영세농이었습니다. 쌀 산업이 국제화 개방화로 가다 보니 정부에서는 전업농 육성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는 인위적으로 개편할 성질은 아니라고 봅니다. UR 협상 당시 700만 명에 달하던 농민이 이제 350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0년 후에는 150만 명(40만~50만 농가) 정도까지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농민은 줄지만 농지는 그대로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40만~50만 농가가 4ha 이상의 농지를 보유하고 농사를 짓게 될 텐데, 굳이 전업농을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라고 말하지만 결국 전업농 육성 자금이라는 것이 보조가 아닌 융자일 텐데 과거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경영 능력이나 전문화 정도에 대한 고려 없는 전업농 육성을 통한 규모화는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후계 인력을 어떻게 육성해 농지를 지켜 나가느냐에 좀더 세심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현행 40세 이하인 신규 후계농업경영인 신청자격을 45세까지 확대해 선정 인원을 증원해야 할 것입니다.
윤장배 : 개방화 시대에 우리 쌀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모화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우선 6ha 규모의 전업농 7만 가구 육성 부분은 도시 중산층의 소득 기준에 따라 정한 것인데, 이는 꼭 6ha로 못박는 것은 아니고요. 다소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35세 미만의 젊고 유능한 창업농을 선발하는 등 향후 신규 영농 인력을 4만5,000명까지 육성할 방침입니다. 산지 유통 마케팅도 강화해 경쟁력 제고의 보루로 만들어 나갈 계획도 있습니다.
[B]쟁점4 추곡수매제 유지냐, 폐지냐 [/B]
코리아플러스 : 정부는 추곡수매제 개편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이를 위한 법적 근거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이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 또한 높은 것이 사실인데요. 그 추진 배경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농민들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윤장배 : 우선 추진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쌀 협상에 따라 불가피하게 예상되는 국내보조금 감축과 쌀시장 개방폭 확대라는 여건 변화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쌀 수매는 총 생산량의 15% 정도이고 앞으로도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쌀 수매제가 그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안으로 식량안보 차원에서 WTO 규범에서 허용하는 ‘공공비축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정의 : 수매제는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입니다. 기본적으로 수매제는 쌀값 안정과 효과적인 수급 조절 등의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공공비축제는 가격 지지 기능이 없고 비축 부족분만 충당하는 형태로, 매년 소비량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연간 300만 석 이상은 사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기존 추곡수매량 510만 석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윤장배: 아직 공공비축제 전면 도입을 결정한 단계는 아닙니다. 공공비축제와 수매제를 병행하는 방안이 좋은지, 공공비축제로 전면 전환하는 것이 좋은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확정할 것입니다. 공공비축제를 시행할 경우 600만 석 규모를 생각하는데, 이는 2년에 한 번씩 회전시키려고 합니다. 즉, 매년 300만 석은 확보되는데, 구매 가격은 수매가에 못 미치는 시장가격이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는 농민 입장에서 보면 다소 불만스럽겠지만 WTO가 인정하는 허용 보조를 감안할 때 불가피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쌀값 하락에 따른 소득 감소분은 직접지불제 확대를 통해 보완하려고 합니다.
서정의 : DDA 농업협상 종료까지는 보조금이 감축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추곡수매제는 일단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요. DDA 농업 협상 후에는 공공비축제를 통한 수매 방출 정책으로 전환하더라도 남는 AMS(WTO가 허용한 감축 보조) 중 50% 이상은 쌀값 폭락에 대비한 긴급 수매용 재원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윤장배 : 공공비축제 시행에 대비해 수매 물량의 감축분에 대해 민간 유통을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할 생각입니다. 또 미곡종합처리장(RPC)의 기능도 확충해야 할 것 같고요. 중요한 것은 제도를 어떻게 운용하든 농민 소득 감소분에 대한 보전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B]쟁점5 농협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B]
코리아플러스 : 정부의 농업개혁안도 결국 농협의 체질개선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농민들의 시각입니다. 특히 불가피한 농업 개방 확대와 맞물려 농민의 이익을 지켜줄 농협 개혁 문제가 최근 핵심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서정의 : 농협개혁 문제 중 핵심은 우선 농협중앙회의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 농민의 이익을 대표해야 할 농협은 그동안 너무 신용 사업에만 치중한 측면이 있습니다. 농협은 금융업계의 주도권 다툼의 논리가 아닌 경제 사업 활성화와 농민조합원 실익 증진이라는 대원칙 속에서 신·경 분리를 추진해야 합니다. 또 시·군 지부를 폐지하고 1시·군 1지역조합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리고 논밭 200만ha 중 밭 85만ha를 전산화해 농협이 농산물의 수급조절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유통 부문에서는 ‘우리농산물의 원산지표시제’를 통해 유통 구조의 혁신적 체질 개선이 필요합니다.아울러 농림부 내에 농협개혁위원회를 설치해 농협법을 비롯한 제반 개정 사항을 논의해 연내에 완료할 것도 제안합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119조 원 투융자 안을 확정해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농협개혁 없이는 200조 원을 투입해도 안 됩니다.
윤장배 : 농협은 자율단체이기 때문에 조합원의 결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입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정부의 농협법 개정안은 그동안 농민단체와 일선 조합장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것입니다. 또 농협법 개정 외에 농협이 자체적으로 추진해야 할 개혁 과제의 경우 올해 말까지 농협과 농민단체, 정부가 함께 세부추진 계획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다만 농협이 주인인 농업인의 의사에 반해 개혁을 소홀히 할 경우 정부로서도 강력한 개혁 의지를 갖고 농업인과 함께 개혁을 요구할 것입니다.
[U]<<외국의 쌀 개방 협상에서 배운다>>[/U]
[B]일본, 高관세 부여 수입량 미미 [/B]
[B]대만, 의무수입량 늘어 가격급락[/B]
서진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지난 5월초부터 시작된 쌀 협상은 상대국의 기본 입장에 대한 탐색 단계를 넘어 8월부터 관세화 유예 조건을 놓고 구체적인 수치가 오가는 본격 협상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 앞서 쌀 관세화를 발효한 일본·대만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일본은 관세화 이전에도 관세화 유예에 따른 의무 수입량의 일정 부분(약 10만t 내외)을 민간에 의해 수입해 왔다. 유예기간 중에도 수입쌀이 일본 국내시장에서 일본쌀과 경쟁하면서 유통된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쌀이 수입쌀과 경쟁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격차를 계산해볼 수 있었다(1998년 기준으로 kg당 160엔 수준).
그런데 농업협정문에 따라 기준기간(1986~88년) 평균 국내외 가격차는 kg당 350엔에 달해, 관세화 전환 이후로도 20년 이상은 의무수입량을 넘어선 쌀 수입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관세화 이후 일본은 의무수입량 이외의 추가수입분은 매년 100~225t 안팎에 불과하다. 당초 예상대로 쌀 수입은 사실상 차단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일본은 의도적으로 관세화 이후 외국산 쌀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일본의 높은 관세율은 호주, EU, 브라질, 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부터 이의제기를 받았지만, 결국 일본의 관세화는 2002년 7월 공식 발효되었다.
의무수입량도 대부분 국영무역 형태로 관리되고 있으며, 가공용 또는 일본산 쌀과 함께 해외 원조용으로도 사용돼 국내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였다. 반면 일본의 고급 쌀을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비록 소량이기는 하지만 일본은 관세화 이후 대만, 미국,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에 오히려 쌀을 수출하고 있다.
2002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대만은 1년간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 국내소비량의 8%(14만4,720t/현미기준)를 의무수입량으로 설정했다. 의무수입량 가운데 전체 35%는 민간에서 수입하되 연내 반드시 시장에 공급되도록 하는 조건이었다.
이와 같은 관세화 유예 조건에 대해 대만의 자체 평가는 상당히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WTO가입 직전 대만의 쌀 수입량은 연간 7,000t 수준으로, 그것도 일부 수출용에 불과했다. 이런 와중에 연간 14만t이 넘는 의무수입량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 대만의 쌀 가격은 WTO에 가입한 2002년 가을 연초 대비 25% 가량이나 하락했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긴급수매로 쌀가격을 지지하는 한편 그 동안 실시했던 생산조정을 보다 강화하는 등 WTO 가입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 대만은 미국으로부터 다시 관세화 유예 연장을 조건으로 의무수입량을 매년 2% 높여달라는 요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무수입량 14만5,000t 만으로도 가격이 폭락해 정부수매와 휴경면적 확대 등 긴급보완대책을 실시했던 대만 입장에서 매년 2% 증량이란 수용 불가능한 요구인 셈이다.
결국 대만도 2002년 9월30일 쌀 관세화를 단행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대만의 쌀 수입은 관세화 이전의 의무수입량 이내에서만 이루어져 일단 수입 측면에서 관세화는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WTO 가입과정에서 허용한 과도한 의무수입량의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은 미흡하다고 판단된다.
[SET_IMAGE]6,original,left[/SET_IMAGE]일본, 대만의 쌀 협상 경험은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의 경우 관세화 전환에 대비하여 생산자단체인 전국농협중앙회(전중)를 중심으로 1년에 걸쳐 의견을 집약, 관세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였다. 관세화에 대비해 쌀 정책을 세운 점도 배울 대목이다. 일본은 쌀 관세화의 전제조건으로 1997년 11월 ‘새로운 쌀 정책 대강’을 통해 쌀 정책을 개혁하였다. 관세화에 따른 가격하락에 대비하여 ‘도작경영 안정대책’을 도입했고 이에 따라 가격하락의 일정 부분을 보전하는 장치가 마련됐다.
이에 반해 대만은 WTO 가입조건, 특히 쌀 관세화 유예에 따른 국내시장 영향 분석도 부족했다. 이로 인해 의무수입량의 시장방출로 국내 쌀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일본, 대만의 쌀 협상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의 쌀 협상은 관세화 유예든 관세화든 사전에 관련 쌀 정책의 정비 등 철저한 준비와 대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ET_IMAGE]7,original,center[/SET_IMAGE]“대한민국 최고의 쌀 전업농, 그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충남 부여에서 대규모 벼농사를 짓는 표희윤(50) 씨. 그는 농산물 수입 개방이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국내 벼농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신지식농업인’으로 꼽힌다. ‘세도위탁영농회사’ 대표이기도 한 그는 부여군 세도면 일대 6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땅에 벼농사를 짓는 ‘거농(巨農)’이다. 말이 거농이지 회사 이름이 말해주듯 그는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위탁농’이다. 옛말로 하자면 대규모 ‘소작농’인 셈인데, 소작농치고는 상당히 특별하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서 68번 지방도를 타고 황산대교를 건너 2.2㎞를 달리면 나타나는 부여군 세도면 귀덕리. 지난 9월말 취재진이 표씨의 일터를 찾았을 때 그는 마침 땡볕이 내리쬐는 들판에서 부인과 함께 벼 육묘장을 설치하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여느 시골 농사꾼과 다를 바 없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육묘장은 금세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평에 달하는 철골로 만든 육묘장의 첨단 자동화 시설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벼농사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서는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래서 육묘장 만드는 데도 심혈을 쏟았습니다.”
표씨가 평소 입버릇처럼 내뱉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말에는 그의 농사일에 대한 의지와 애정이 배어 있었다.
세도면 토박이인 표씨가 위탁영농회사를 설립한 것은 10년 전. 농촌이 고령화되면서 계속 노는 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그는 고령농, 부녀농과 고향을 등진 이들의 전답을 차례로 임대하면서 대규모 영농체제를 갖추었다. 그가 현재 위탁농사를 짓는 땅은 세도면과 인근 임천면뿐만 아니라 강경읍까지 산재해 있다. 회사 설립 당시 20만 평 규모로 시작한 경작 규모는 10년이 지난 지금 3배 가량 늘어났다. 그보다 20여 년 앞서 위탁영농 사업을 시작한 세도면농협의 위탁영농 재배 면적보다 더 넓다.
“농촌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살 길을 찾아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나가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노는 땅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위탁영농회사 설립을 결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영농의 규모화를 실현해 생산비를 줄이고 자본 기술 집약형 영농을 한다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60만 평이라는 광활한 대지에서 쌀을 생산해 온 그는 ‘미쓰리’라는 쌀 브랜드도 만들었다. ‘맛있고(味), 모양 좋은(美) 쌀(米)’이라는 의미로 이름붙인 ‘미쓰리’는 특히 세도면 귀덕리의 점토질 논에서 재배한 고품질 쌀로 ‘일품벼’와 ‘동진1호’ 등 우량 품종들로 만들어진다.
표씨는 ‘미쓰리’를 서울과 대전지역의 아파트 단지와 직거래하거나 부여군 특산물 쇼핑몰인 ‘사비장터’(www.sabinet.co.kr)와 대전지역 유기농 홈쇼핑 사이트인 ‘누림팜’(www.nurimfarm.com)을 통해 판매한다.
“미쓰리는 양돈농가의 발효 돈분과 쌀겨, 목초액 등을 살포해 무농약으로 재배한 쌀입니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농업용수도 수질이 나빠진 금강 하류 물 대신 인근 용마골저수지의 맑은 물을 사용하는 등 청정농법을 도입했습니다.”
이처럼 무농약 재배에다 맑은 물, 풍부한 햇살이 빚어낸 미쓰리는 최고급 청정쌀로 정평나 있다. 표씨는 “코앞에 닥친 쌀 개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쓰리를 최고 품질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표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정규 학력의 전부지만 영농에서는 ‘신지식인’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지역농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어릴 때 꿈꾸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20대 중반부터 농업기계에 대한 공부를 시작, 6개월 만에 농업기계 기능사 2급 자격증을 땄고, 1983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농업기계 사후 봉사요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85년 귀국 후 고향에서 800여 평의 밭을 임차해 토마토 농사를 지었지만 극심한 가뭄을 만나 실패의 쓴맛도 보았다. 이 때문에 농사를 포기하고 1986년 면사무소에 기능직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대농(大農)이 되겠다는 야망을 포기하지 못한 그는 1992년 지역 농업인 후계자로 선정되면서 농사일에 재도전했다.
[SET_IMAGE]8,original,left[/SET_IMAGE]“선진 영농기술 실천과 보급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농촌도 잘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접고 손에 흙을 묻히기로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죠.”
고향에 위탁영농회사를 설립한 뒤 휴경 논들을 임차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그는 불편한 농기계나 인력비용절감을 위한 아이디어를 꼼꼼히 일지에 기록하면서 새로운 농기계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농기계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그는 농한기를 이용해 농촌진흥청, 농촌지도소의 각종 교육에 참가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기계화 농업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1998년 충남대 농과대학 최고농업경영자과정을 수료한 그는 2000년 폐농기구(콤바인)를 이용해 상토 조제기를 개발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이밖에도 육묘상자 운반시스템, 대량 출아시스템, 유압식 콤바인 트레일러, 무한궤도식 유압덤프 농작업차, 대형 트랙터 브레이크 오작동 방지 장치, 농업용 트랙터 견인 윈치 등 30여 종의 농기계를 개발 개량해 2001년 ‘제9회 충남 농어촌발전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 3월에는 농림부의 ‘2004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되면서 이름 앞에 ‘농기계 박사’라는 또 다른 수식어를 얻었다.
“아직도 농촌을 떠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최근 2년 동안 세도면에서만 농가부채와 농산물값 폭락을 견디지 못해 농업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난 농가가 50가구를 넘습니다. 농촌의 젊은 사람들이 힘겨운 현실에 낙담해 고향을 등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누렇게 익은 벼가 넘실대는 들녘을 바라보며 “올해는 풍년”이라고 즐거워하던 그는 눈앞에 닥친 쌀 개방 이야기가 나오자 “농업인들도 항상 배우는 자세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외국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결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농촌을 지키는 이들이 더욱 진취적인 자세로 농업경영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지방화,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영농기술을 개발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IGHT]충남 부여=최일 대전매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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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8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의 한 음식점에서는 커다란 환호성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자리에서 열린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대표 정운천)의 조합 총회에서 올해 순이익 13억4,000여 만 원 가운데 9억2,000만 원을 조합원 130여 명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키로 결정되자 참석자들이 환호성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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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산이면에서 7,000여 평의 키위농사를 짓는 김승남 씨는 이날 배당금 4,800여만 원을 받게 되었다며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는 배당금뿐만 아니라 지난해 총 63t의 참다래를 생산해 연매출 1억여 원의 부농으로 뛰어올랐다.
3,000여 평에 참다래 농사를 짓는 문경율(61·전남보성군 회천면) 씨도 “사실 농사는 판로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참다래는 나무에 열린 상태에서 가격과 판로가 결정돼 농사지을 맛이 난다”면서 “주변에도 참다래 농사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방 농정 시대를 맞아 영농조합법인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의 성공 사례가 우리 미래농업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농업의 삼성전자’로 통하는 한국참다래 유통사업단의 성공 비결은 기술농업으로 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과학적 마케팅을 도입해 시장을 장악한 데 있다. 상품성에다 마케팅력까지 갖춰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전남지역과 제주, 경상도 지역 519농가로 구성된 참다래유통사업단은 지난해 220억 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총 275억 원의 매출을 올려 20% 이상의 매출증가율을 기록했다. 순이익 13억4,000여 만 원도 영농조합 가운데 전국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나아가 농산물유통공사가 전국 산지 유통 전문 조직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4년도 경영실적 평가에서도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유통사업단 정운천 조합 대표는 성공 이유를 ‘3장(場) 통합론’으로 설명한다. 1장은 파종에서 생산까지의 과정, 2장은 농산물을 상품화하는 과정, 3장은 상품이 소비자에게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유통사업단은 이 3단계 과정을 시스템화한 것이다. 정 회장은 “현재 우리 농업의 대부분은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과정에 있지만 참다래유통사업단이 취급하는 참다래와 고구마는 이미 3장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생산은 물론 소비시장을 장악해 공급과잉을 미리 막을 수 있을뿐더러 시장의 가격주도권을 농민들이 갖게 됐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내 농산물은 생산에만 치중해 유통 과정에서 쓴맛을 봤지만 참다래는 오히려 소비자 시장 분석에 집중해 시장 수요의 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참다래는 본격적인 출하 6개월 전인 개화기에 꽃이 피는 상태에 따라 한해 공급량을 미리 예측하고 수입량과 경기 흐름 등을 감안해 시장 수요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공급과잉을 사전에 막아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참다래에 그동안 ‘가격폭락’이라는 말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정 회장은 수입량 증가로 인한 공급과잉 상황에 대해서도 “대부분 판매점에서 대대적 특판전을 상시화하는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면서 “시장을 꾸준히 키워나가면서 공급량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다래유통사업단에 따르면 국내 참다래 시장 규모는 지난 1990년 20억 원에서 현재 400억 원대로 커졌다. 성장률이 매년 10~20%에 달한다. 유통사업단이 중점 품목으로 생산하는 고구마도 새로운 유통 시스템으로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동안 고구마는 일반적으로 흙이 묻은 것이 상품으로 여겨졌지만 세척과 저장, 고품종, 포장법 등 8가지 개념을 적용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고구마를 고급 다이어트 상품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SET_IMAGE]11,original,left[/SET_IMAGE]참다래유통사업단은 향후 참다래 사업과 관련해 다양한 신제품 개발과 땅심(地力)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고 한다. 해남은 본래 손꼽히는 옥토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력이 상품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유통사업단은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지표면의 40cm 정도를 걷어내고 흙을 갈아엎은 후 유기농 퇴비를 사용해 지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유통사업단은 나아가 개방화 여파로 향후 참다래 수입이 더욱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 이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고 있다.
“농산물은 무엇보다 가격경쟁력이 우선되는데, 현재 국내 시장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외국산 키위 가격이 국산의 30% 선까지 내려가면 국내 참다래 농사도 영향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농업개방이 농민들에게는 절박한 위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농업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 회장은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향후 참다래와 고구마를 철저하게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후계 영농조합원을 정예화해 200개 농가에 200ha 정도를 경작하게 해 농가당 부가가치를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인 신품종 ‘금다래’와 ‘홍다래’도 시장에 선보여 한국 참다래 시장을 넓혀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RIGHT][B]전남 해남=오성수 광주매일 기자[/B][/RIGHT]
[SET_IMAGE]12,original,center[/SET_IMAGE]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주형로(45) 씨는 1993년 어느 날 이 마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홍순명 교장에게 오리농법에 관한 일본 잡지 기사 한 장을 건네받았다. 이는 <현대농업>이라는 잡지에 게재된 일본 전국오리농업인회장 후루노의 글로, 청둥오리를 논에 넣어 기르면 발가락 사이가 붙은 오리가 돌아다니는 동안 풀이 자라지 못하며, 벼 포기를 건드려 떨어지는 벌레를 잡아먹고, 배설물은 거름이 되기 때문에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농사법이 소개된 기사였다.
주씨는 다음해인 1994년 자신의 논 9,000평과 같은 마을 주민 곽민기, 이동준 씨의 논 각 1,000평에 오리농법을 시험적으로 적용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에 고무된 그는 다음 해에는 오리농법 농경지를 늘려 문당리 지역 19농가 3만1,900평 단지를 조성하고 오리농법 작목반을 만들었다. 문당리 오리농법은 그 후 홍동면 전체로 퍼졌고, 이웃 장곡, 금마면, 홍성읍 등 군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올해 문당리 전체 85농가 중 77%인 66농가, 전체 면적의 90%인 15만 평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부재지주나 노인들이 농사짓는 집 말고는 모든 농가가 오리농법에 참여한 셈이다. 홍동면 전체 937ha 중 53%인 약 500ha, 홍성군 전체로는 720농가가 참여해 1만10ha 중 6.8%에 해당하는 680ha의 논에서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환경농업 비율 2%의 세 배 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SET_IMAGE]13,original,left[/SET_IMAGE]관광자원이나 내세울 만한 특산물도 없는 평범한 농촌마을이 오리농법 시행 뒤 우리나라 농업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마을로 부상하고 있다.
홍동면의 풀무생활협동조합 조합원 성낙천(58) 씨는 지난 9월8일 조생종 특미인 흑향미를 수확했다. 성씨는 논 25마지기를 전환기농법으로 재배하면서 그 중 8마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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