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양희성 ‘동생과 나’
양희성 작가가 막 걸음마를 뗀 세 살 때 대기업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베트남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 가족 모두가 베트남으로 떠나게 됐다. 홍콩을 경유하기 위해 잠시 홍콩 공항에 내렸는데 그는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낯선 사람들을 보고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아 갓난아기를 안고 있던 어머니는 진땀을 흘렸다. 그는 하노이 공항에 마중 나온 아버지를 보고 겨우 울음을 그쳤는데 하노이에 마련한 집에 들어갔을 때 집안일을 도와주는 베트남 사람들이 낯설어 거실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타지에서 한국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진 충격과 공포를 겪었던 것이다. 그에게 사랑을 듬뿍 쏟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처음 듣는 언어로 말을 하며 다가오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견고한 방어막 안에 숨어버렸다. 젊은 부모는 그의 그런 반응을 아이가 너무 여리고 예민한 성격 탓으로 여겼다.
그래서 1년 후 한국에 들어왔는데 경북 구미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앞장서서 집을 찾아가 “여기 있다”라고 말했다. 예전에 살던 집과 좋아했던 모든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자폐는 아닙니다”라고 자신 있게 진단하며 점차 괜찮아질 거라는 의사의 말에 안심하고 베트남에 다시 갔지만 그는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또래에 뒤처지고 있었다. 베트남은 그를 키우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몇 달 전 어머니는 아버지만 남겨두고 아들 둘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의 치료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화실에서 그가 다른 곳과 달리 불안해하지도 않고 긴장한 기색 없이 너무나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 화실을 놀이터처럼 미술을 친구 삼아 매일 찾아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그의 스승인 김언중 화백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김 화백은 묵묵한 기다림과 편견 없는 일관된 사랑으로 그림을 통해 치유하고 그림을 사랑해 예술이 삶이 되도록 지도했다.
그는 화실에 다니기 시작한 뒤 1년 동안 어떤 것을 그려도 마지막엔 스스로 새까맣게 칠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줄기 빛처럼 색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날이 지날수록 다양한 색깔로 그림을 완성하게 됐다. 그렇게 더디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양 작가는 동생과 같은 일반 학교에 다녔는데 동생은 두 살 어리지만 학년은 1학년 차이가 나기 때문에 11년 동안 형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중학교 시절 각종 미술 대회에서 입상을 하자 학교 축제 때 개인 전시 공간을 따로 마련해줬다. 고등학교 때는 일반인 미술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학교를 알리는 홍보 엽서에 그의 작품이 뽑히면서 화가의 꿈을 향해 더욱 노력하게 됐다.
대학 입학을 계획했다. 하루에 몇 시간이고 이젤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림을 그릴 정도로 미술을 좋아하지만 입시를 통과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낯선 사람과 의사소통이 어려운 그에게는 면접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언어치료실에서 6개월 동안 면접 준비를 해 그가 바라던 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회화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대학에 입학해 처음에는 낯선 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만의 작업 방법을 인정해주고 지도해주는 교수와 동기들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행복해했다.
특히 스케치를 하지 않고 캔버스에 곧바로 채색 작업을 하며 구도를 잡는 자폐인의 서번트신드롬 특성은 교수들과 학부생들을 놀라게 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구경북연합 미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애플민트전에서 그의 작품이 제일 먼저 뽑혔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양 작가는 그와 가장 친밀한 가족을 모티브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해 가족과 함께 갔던 여행지의 풍경으로 시야를 넓혔다. 요즘은 나비를 오브제로 세상을 꽃밭에 비유해 아름다운 세상을 캔버스에 펼쳐내고 있다. 그는 세상이 아름다워져야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전해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동생과 나’는 양 작가의 어린 시절 형제의 모습인데 2021 장애인창작아트페어에 전시된 작품으로 강남의 어느 화랑 대표가 그림에 표정이 살아 있다고 극찬했다.
1995년생인 양 작가는 스물일곱 살이다. 동생은 형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그는 어린 시설 형제의 모습을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그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몹시 추웠던 겨울 어느 날 몰아치는 찬바람에 한쪽 눈을 찡그리며 동생의 바람막이가 돼준 든든한 우리의 형들이 그리워지는 작품이다.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