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먹는 즐거움이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가치임을 의미한다. 때로는 더 맛있다는 음식을 먹기 위해 긴 대기 행렬을 마다하지 않는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먹는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더구나 그 이유가 불가피한 질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맛있저염’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철저한 식단 관리가 필요한 환자, 그중에서도 콩팥병을 앓는 사람들로 하여금 먹는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콩팥은 노폐물을 배설하고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중요 장기다. 기능이 심하게 저하되거나 소실될 경우 생명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에 이를 수 있어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이를테면 짠 음식을 먹으면 수분 섭취가 증가하는데 콩팥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 수분과 염분 조절이 어려워 부종이 발생한다. 많이 먹을수록 건강하다고 알려진 식재료도 콩팥병 환자에게는 위험 요소다. 칼륨을 다량 함유한 녹황색채소는 부정맥을, 인이 많은 견과류는 골다공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콩팥병 환자는 반드시 저염식 식단을 유지해야 하며 동시에 인·칼륨·단백질 섭취도 제한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맛있다’고 느끼는 식단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슬기·김현지 맛있저염 공동대표는 콩팥병 환자도 충분히 맛있게 식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과 맛의 공존. 맛있저염이 제공하는 맞춤형 식사 배송 서비스의 핵심이다.
▶ 회사 조리실에서 작업 중인 김슬기 대표(왼쪽)와 김현지 대표 ⓒC영상미디어
맛있저염은 식재료를 한정짓지 않는다. 대신 영양소의 정확한 수치를 기반으로 콩팥병 환자에게 안전한 양만 투입하는 방식으로 식단을 꾸린다. 또 염을 낮추되 불맛이나 신맛, 매운맛 등을 활용해 부족한 맛을 채운다. 메인 하나, 두세 개의 반찬으로 구성된 요리는 조리 설명서, 식단 영양표와 함께 배송된다.
“환자들은 스스로 어떤 영양소를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는 알아도 식품마다 그 영양소가 얼마나 들었는지는 잘 몰라요. 먹는 걸 포기하게 되는 부분이죠. 그렇다고 칼륨 섭취는 위험하니 고칼륨 음식을 평생 먹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식재료의 영양소를 아주 미세한 그램 단위까지 계산하고 그것들을 함께 먹어도 안전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맞춤형 요리를 만들어내요.”
김현지 대표는 맛있저염을 ‘ICT 기반 콩팥 상태별 맞춤형 식사 배송 서비스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용자가 웹 서비스에 개인의 건강정보를 입력하면, 회사 측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콩팥 상태를 진단하고 식단을 계획한다. 다만 웹 서비스는 8월 초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현재는 이용자가 병원에서 진단 받은 검사지 내용을 구글 독스(Docs) 형태로 맛있저염에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용자들은 맛있저염의 식단이 실제로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맛있저염은 요리와 함께 식염 농도 측정지를 동봉함으로써 식사 이후 체내 염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향후에는 고객 건강정보를 문서화해 개별 건강 리포트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이용자들은 시간대별로 개인의 체내 위험 수치를 점검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역할도
맛있저염은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과 조리사 외에 임상영양사, 일반 영양사 등도 구성원으로 두고 있다. 두 대표 모두 식품영양학 전공자가 아닌 만큼 정확한 관련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임상영양학 박사님 한 분이 반(半) 팀원 역할로 영양학적 정보를 제공해주고 계세요. 김슬기 대표의 주치의께서는 자문위원으로서 의학적인 부분을 살펴주시고요.”
김슬기 대표는 콩팥병 환자다. 누구보다 콩팥병 환자의 고충에 공감하고 일상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징병검사 과정에서 자신의 병을 우연히 알게 됐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어 그 이후로도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콩팥 기능이 위험 수준에 도달해서야 식단을 바꾸게 됐다. 그러나 막상 시작한 저염식은 유독 맛이 떨어질뿐더러, 혹 콩팥에 무리를 주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다른 식재료도 피하다 보니 ‘먹는 것’ 자체에 흥미를 잃었다. 그가 이 사업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다.
“저는 맛있저염의 대표이면서 1호 고객이에요. 콩팥병을 앓고 있다 보니 지금은 저와 같은 질병의 환자만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식단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 환자, 나아가 노인식 시장도 고려하고 있어요.”
대상자를 한정짓고 있는 이유는 비단 김슬기 대표의 문제여서만은 아니다. 두 대표에 따르면 콩팥병은 식사요법에서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 강한 질병으로 꼽힌다. 김슬기 대표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면 그다음 문제를 풀 수 있듯이 우선적으로 콩팥병 환자의 식사요법을 해결한 뒤 대상자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대표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맛있저염의 역할도 목표하고 있다. 지난 3월 세계 콩팥의 날을 맞아 전개한 ‘저염식 실천 캠페인’은 그 일환이다. 맛있저염은 캠페인을 통해 콩팥병에 대한 정보, 저염식의 중요성을 알리고 거기서 모인 기부금을 소아 콩팥병 환자에게 다시 기부했다. 투석 환자를 위한 채용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투석이 보통 격일로 이뤄지는 탓에 투석 환자는 경제적 활동의 어려움을 겪어요. 그런 고충을 덜어드리기 위해 저희 생산 공장이 확장되면 포장이나 식품 소분, 배송과 같은 일자리를 드리려 해요. 경제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맛있저염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를 묻자, 두 대표 모두 주저 없이 입을 모았다. “고민 없이 음식을 대할 수 있도록 먹는 즐거움을 돌려드리는 겁니다.”
저염식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짜게 먹는 것이 몸에 해롭다’는 건 익히 알려진 정설이다. 나트륨 과잉 섭취는 고혈압과 골다공증, 신장질환 등 여러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덜 짜게 먹는 식습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강주희 수원여자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전 임상영양사)에 따르면 국과 김치류의 섭취만 줄여도 충분히 저염식이 가능하다. 더 구체적으로 그는 “국 대신 누룽지를 시도하고 소금에 오래 절인 김치보다 겉절이, 생채 위주로 섭취할 것”을 권했다. 덧붙여 “밥은 현미와 보리, 흑미 등 잡곡밥으로 대체하고 구이요리와 부침요리는 소금 없이 조리한 뒤 간장에 찍어먹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나트륨을 적게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나 배출을 돕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도 중요하다”며 토마토, 바나나 등을 후식으로 추천했다. 이 밖에도 유제품과 멸치 등 칼슘이 많은 식품, 견과류와 통밀 등 마그네슘이 풍부한 식품도 나트륨 배출에 탁월하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