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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떠 있는 우리나라 섬 가운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동쪽 땅끝 섬. 거리로는 막내섬이 틀림없지만, 나이로 치면 독도는 울릉도보다 오히려 200만 년가량 앞서는 한반도의 ‘맏섬’이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동도와 서도는 마치 금실 좋은 부부처럼 마주보고 웃고 있다. 촛대바위·코끼리바위·독립문바위·물개바위…. 서로 외로움을 달래듯 무릎 아래에 꼬마 섬 32개를 올망졸망 거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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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너른 품안은 짜릿하다. 독도를 찾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백두산이나 금강산에서 느꼈던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며 흥분한다. 5만4,723평, 축구장 7개 크기의 돌섬은 뭍에서 건너온 수많은 생물을 안고 있다.
독도는 한때 수천 마리의 물개떼가 노닐던 물개(강치)천국으로, 18세기 말 가지도(可支島)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였다지만 요즘은 1년 내내 구경조차 어렵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남긴 상처가 멀리 독도 물개에게까지 독을 퍼트린 탓이다.
동·서도를 뒤덮은 수천 마리의 괭이갈매기떼는 그때의 울분을 지켜보았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수십 종의 야생화들은 그 시절의 광기(狂氣)를 기억할까?
4월과 함께 봄이 오자 괭이갈매기는 섬 비탈의 풀밭을 둥지 삼아 알을 낳으러 몰려들고, 괭이밥·민들레·갯메꽃 등 야생화들도 독도의 속살을 만지면서 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수많은 곤충도 계절을 찾아 독도로 몰려왔다.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든 한민족의 완강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할 것이다.”
6·25 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일본의 독도 탈취 기도에 대한 당시 외무장관인 변영태 선생의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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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일본의 영토 시비에도 불구하고 우리 독도는 동해에서 홀로 묵묵하다. 1,500여 년 전 신라 지증왕 때도, 500년 전의 조선왕조 때도 그랬듯…. 천연보호구역 독도는 우리의 문화재로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그 독도가 지난 3월24일 일반 국민에게 개방됐다. 이제 남녀노소의 만세 삼창 소리가 독도에서 동해로 울려퍼진다. 너울과 백파(白波)에도 끄떡없는 해경 경비함의 엔진소리와 독도경비대원들의 힘찬 함성이 ‘돌섬’ 독도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RIGHT]사진·권태균 / 글·김홍균[/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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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