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덕현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하는 등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3차 추경안은 추경 규모(35조 3000억 원), 세입경정(11조 4000억 원), 적자국채 발행(23조 8000억 원), 지출 구조조정(10조 1000억 원)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43.5%)과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5.8%)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하면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이에 대해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이자 부담 낮아 국채 증가 큰 문제 없어
-정부는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2020년 적자국채를 97조 3000억 원 발행할 계획이다.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불황기에는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이 침체해 소득 발생이 저조하게 된다. 조세수입이 줄고 실업보험 등 각종 재정지출이 많이 늘어나 자동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이 이뤄지는 이른바 ‘재정의 자동안정화 장치’가 발동한다. 감소한 세입과 늘어난 재정지출은 재정수지 적자로 귀결된다. 세입 여건이 아주 좋지 않고는 국채 발행 없이 경기부양을 할 수도 없다. 국가는 경제위기 극복, 복지재원 확충, 경기침체 탈출 등 여러 이유로 정부 세입을 초과한 재정지출을 할 경우, 부족한 부분은 국채를 발행해 충당한다. 문제는 어디에 적절하게 지출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해도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속도 조절을 해야 하지 않나?
=지금 크게 늘고 있는 국가채무비율은 물론 조심스럽게 관리하고 살펴봐야 하지만 규모만을 가지고 걱정할 것은 아니다. 국가채무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가 있다. 2019년 국가채무비율 37.2% 가운데 적자성 채무 비중은 56.8%이고 금융성 채무는 43.2%다. 최근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편이지만 국가재정의 건전성 척도 중 하나인 국채 이자 부담은 낮은 편이므로 당분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예전 4~5% 이자율에 발행되던 국채와 지금 1%대에 발행되는 국채에 대한 부담은 많이 다르다. 아마도 상당한 기간 국채 이자율이 경상성장률(물가상승을 포함한 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다.
-3차 추경안 발표 뒤 국가채무비율 40%라는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진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의 적정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국가채무비율만 봐서 안 된다. 우리의 경제·사회 발전 구조를 역사적으로 조망해보면 ‘경제성장-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위해 ‘사회복지-형평성’이라는 가치가 희생돼왔다. 이는 재정지출의 분야별 재원 배분의 추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경제지출 과다, 복지지출 과소’가 지난 시기 분야별 재정지출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 재정지출의 재원조달 구조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국가재정 재원조달의 두 축 중 하나인 조세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유지돼왔다. 그 결과가 ‘낮은 복지 수준-낮은 국가채무비율-낮은 조세부담률’인 것이다.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선진국 중 국가채무비율과 조세부담률이 동시에 낮은 나라는 없다. 즉, ‘높은 복지 수준-낮은 국채비율-낮은 조세부담률’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른바 ‘재정 트라일레마(Fiscal Trilemma)’의 덫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화려한 재정건전성은 ‘낮은 복지 수준-낮은 조세부담’으로 유지돼온 측면이 있다. 따라서 국가채무비율만으로 재정건전성을 논하는 것은 한쪽 측면만 보고 얘기하는 것이다. 국가채무비율의 급증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합의된 채 형성돼온 낮은 조세부담률에도 원인이 분명히 있다. 향후 재원조달의 두 방편인 국채비율과 조세부담률의 적정한 조합을 위한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1990년대 미국 적극재정이 재정건전성 이끌어
-이번에는 위기를 넘긴다 해도 이렇게 빚이 늘다 보면 제2, 제3의 비상사태에서 사용할 재정 여력이 있나? 다음 위기에는 무엇으로 대처하나?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게 될 수준의 국가채무비율과 현재 비율의 차이를 재정여력(Fiscal Space)이라고 하는데, 124%포인트를 초과하면 안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 국제신용평가사무디스는 한국의 재정 여력이 241%포인트로 팽창적 재정정책을 감수할 여건이 된다고 봤다. 반면 일본, 이탈리아, 그리스, 사이프러스 등은 재정 여력이 0%포인트였다. 최근인 2018,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조사 자료를 봐도 한국은 ‘상당한 정도’의 재정여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투입하면 효과가 정말 있나? 일본은 20년 동안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국가채무만 급증하지 않았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각국의 재정정책이 효과가 있었나? 성공 사례를 말해달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통화정책으로 비정상적 정책이라 불리는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 통화정책으로는 실물경기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경기침체 역시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하지 않고는 다른 정책수단으로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선진국들은 평균적으로 GDP 5% 이상 재정지출을 많이 증가시켜 위기를 극복했다. 국가채무를 늘려 확장하는 이른바 확장적 재정정책의 시기가 있으면, 경기가 회복되고 경제체질이 건강해지는 재정건전화의 시기도 역시 온다. 1990년대 미국이 그 역사적 사례다.
장기적 안목에서 재정 역할 강화해야
-세 차례 추경안에서 나온 금융 안정대책, 기업 안정대책, 재난지원금, 일자리 유지자금 등 정부의 재정투입 방식에 대해 단기적이며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확장재정이 옳다고 해도 우리 정부의 재정투입 대책은 옳은가? 투입 분야에서 이게 최선의 방식인가?
=1~3차 추경안을 포함한 2020년 총예산 547조 원이 적극적으로 집행된다고 할 때 과연 적절한 재정 투입이었는지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본격적인 경기 회복세는 재정만으로는 어려울 수 있으며 수출 및 내수경기의 회복 주기와도 조응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둔화하고 있으며 사회안전망과 고용안전망을 더욱 강화해 분배 구조를 개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재정정책을 통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성장과 분배가 조화로운 포용국가로 나아가려면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 교역량 축소나 인구 고령화 같은 대내외 구조적 여건 변화로 침체가 가속화하는 것을 막는 것 역시 성장정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육 확대 및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여성과 장년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 노동공급의 측면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확대해 유효수요 기반을 넓혀가는 가운데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 확립, 교육 및 공공부문의 개혁 등 각종 구조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데 재정을 적절히 활용하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예산도 확장 예산이 예상된다. 2022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로 세수가 위축되고 있는데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나? 계속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해야 하나?
=당분간 재원조달은 적자국채 발행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본다. 1~3차 추경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출 효율화를 통한 재원조달도 많이 달성된 것을 고려할 때 지출 구조조정도 아울러 이뤄져야 한다. 한 해 국고보조금 60조 원과 비과세 감면 40조 원 등에 대한 재정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모든 것을 국채 발행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의존할 수도 없다.
재정은 위기 때 쓰라고 평상시 건전하게 유지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10년에 한 번꼴로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위기 때마다 맞설 카드로 적극재정이 부각되면서 ‘재정 만능주의’에 빠졌다는 비판도 있다. 위기 대응책이 재정 확장밖에 없나? 재정 만능주의에 빠질 우려는 없나?
=재정은 이런 위기에 쓰라고 평상시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경제위기에 그나마 건전한 재정을 유지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재정에만 늘 의존할 수는 없다. 앞서 설명했듯 재정 확장의 시기가 지나가고 경제성장과 안정적 경제 상황이 도래할 때 재정건전화의 시기를 맞이할 수 있다. 단, 재정건전화를 위해서는 경제와 경제주체가 모두 살아 있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그 모든 것을 위협하고 있는 엄중한 시기다. 이를 고려해야 한다.
-경제 전시 상황이지만 전후 복구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정건전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미국이 1969년 닉슨 행정부 이후 지속했던 재정적자 시대를 1998년 가을 클린턴 행정부의 균형재정 달성으로 끝내기까지 29년이나 걸렸다. 적자재정에서 균형재정으로 가는 재정건전화는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이를 감내하려면 경기호황과 경제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다. 재정을 통해 극심한 경기침체를 회복하고 미래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 전쟁에 준하는 경제 상황에서 세 차례 추경안으로 대규모 확장 재정정책을 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재정건전화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