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잡월드 청년작가공방을 가다
경기 성남시에 있는 국립직업체험관 한국잡월드는 청년 등 모든 세대와 접점을 늘리기 위해 만들기 체험관 ‘메카이브’를 새로 조성했다. 4, 5층 3355㎡ 공간에 300여 가지 다양한 재료와 도구, 장비를 이용한 만들기 활동을 통해 창작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기본 색상인 C(파랑)·M(자주)·Y(노랑)·K(검정)로 4개 공간을 나누었다. C블록과 M스트리트에서는 목공, 섬유, 유리 등의 재료와 장비를 이용해 자신만의 상품을 기획하고 직접 제작할 수 있고, K그라운드는 유·초등 전용 공간으로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칠보 가마 등 장비 충실히 구비
Y클래스에는 청년 작가들이 운영하는 ‘청년 작가 공방’이 있다. 한국잡월드는 최근 가죽·금속·유리·목공·전통공예 분야 유망 청년 작가 5명을 선정해 강좌를 운영할 공간과 장비를 제공했다. 전문성과 운영 안정성 등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된 이들은 소재별 공방을 맡아 다양한 만들기 강좌를 운영하게 된다. 강좌 운영 시간 외에는 작품 활동도 가능하고 한국잡월드가 작품 전시와 판매도 지원한다. 입주 기간은 1년으로 고객만족도 조사 등을 통해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12월 8일 오후 나란히 붙어 있는 5개 ‘청년 작가 공방’ 가운데 금속 공방에 들어서자 수강생용 책상들 옆에 금속공예에 필요한 여러 장비가 보였다. 금속 분야에 선정된 곽지원(29) 씨는 “입주해보니 금속공예 할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장비들이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충실하게 갖춰져 있었다. 수강생용 책상도 훌륭해 감동했다”고 말했다.
몇몇 장비는 곽 씨가 따로 요청한 것이다. 전기 용접기는 얇은 링으로 연결하는 체인 목걸이를 만들 때 사용할 계획이다.
“어린 친구들이 직접 만든 목걸이가 끊어졌다고 또 찾아올 때가 있어요. 먼 걸음 하지 않게 마감을 제대로 해주려고 요청했는데 감사하게도 한국잡월드에서 보완해주셨어요.”
작은 가마도 보였다. 우리나라 전통 기법 ‘칠보공예’에 꼭 필요한 장비다. 900℃ 고온에서 가루 유약을 녹이면 유리질로 변하며 다양한 색상이 나타난다. 공방 앞쪽에 전시된 곽 씨의 작품 가운데 칠보 작품은 화려한 색상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칠보공예가 매력 있는 건 색감 때문이에요. 다른 금속은 재료 고유의 색만 가지는데 칠보는 원하는 대로 색을 올릴 수 있거든요.”
금속공예는 어린이가 체험하기 어렵고 위험한 작업으로 인식되는데 칠보공예는 가마에서 굽는 것만 도와주면 어린이도 충분히 작업할 수 있다고 했다.
곽 씨는 어릴 때 별명이 ‘뚝딱이 선생님’이었다. 친구들 수행평가를 대신 해줄 정도로 그림과 만들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고교 2학년 때부터 입시 미술을 시작해 동덕여대 디지털공예과에 입학했다. 학과를 놓고 고민할 때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거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다른 공예과와 달리 디지털공예과에선 금속, 섬유, 도자를 모두 가르쳤다. 곽 씨는 이 가운데 금속을 주전공으로 선택했다.
전공 다른 패션잡화 업체 취업
“도자는 제가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가마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더라고요. 변형돼 깨져 나오면 너무 화가 나고 노력이 배신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금속은 배신하지 않거든요. 실패해도 다시 땜질하고 이음매를 다시 붙이는 등 노력하면 결과물이 나오잖아요.”
그러나 주전공과 달리 벽지 회사 디자인실에 취업했다. 이후 유명 패션업체 등에서 패션·잡화 디자이너로 5년 동안 근무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금속은 취업할 데가 별로 없어요. 종로상가의 주얼리업체 정도인데 굉장히 영세한 회사들이 대부분이에요.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 취업하기에는 기회가 많은 패션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금속 공방에는 곽 씨의 손때 묻은 작업대가 놓여 있었다. 10년 전 대학생 때 마련한 작업대라고 했다. 패션·잡화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도 금속 관련 장비를 계속 샀고 자취방을 옮길 때도 커다란 작업대를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녔다. 그때를 돌아보며 “한번 작업을 놓으면 평생 못 할 것 같았고 그게 너무 슬플 것 같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냥 취미라 생각하고 퇴근한 뒤에도 주변 사람들 선물을 만들며 계속 작업했어요. 진짜 좋아하니까요. ‘20대 아니면 발을 들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회사에 다니면서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작업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퇴근한 뒤 집에서 작업하면 금속 가루가 막 날렸다. 자신만의 작업실이 갖고 싶었다. 집 근처에 알아보니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계약해도 되나 망설일 때 지인이 한 말에 용기를 얻었다. ‘너 명품 백 살래? 아니면 이거 할래?’
“명품 백 하나 없어도 내 인생 안 바뀌니까 이거 한번 해보자 싶어 저질렀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는데 엄청 큰 고민이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한 뒤 1~2시간은 작업실에 머물렀다. 6개월이 지나자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 위주로 강좌를 진행하는 등 준비 기간을 거쳐 2022년 4월 퇴사했다. 곽 씨는 “회사에서 얻는 성취감보다 내 작업에서 얻는 성취감이 훨씬 커서 이 길을 오게 됐다”고 했다.
퇴사하자마자 ‘귀금속가공기능사’ 국가자격증 준비에 들어갔다. 정규과정 700시간을 수료하면 시험 자격이 주어졌다. 대학 전공자라 시험을 그냥 칠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고 싶어 6개월 동안 수업을 들었다.
“퇴사한 뒤 ‘늦잠 좀 잤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이틀 쉬고 바로 학원에 출근하다시피 가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수업을 들었어요. 회사 다니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절박할 때 ‘꿈을 찾는 곳’ 감명
한국잡월드 1층에는 ‘꿈을 찾는 곳’이라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귀금속가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직후 ‘청년 작가 공방 공고’를 보고 건물을 답사하러 왔던 곽 씨는 그 문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다들 직업적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간절한 마음으로 힘들게 들어간 회사라 퇴사를 결정하기 어려웠던 만큼 절박함도 컸는데 이런 취지로 운영하는 곳에서 기회를 준다는 게 저한테 크게 와닿았어요.”
회사에서 나온 뒤 금속공예 브랜드 ‘고아크(Goarc)’를 운영하는 그는 “사람들한테 개인 브랜드를 알리기에는 진짜 제약이 많고 어려움도 크다”며 “청년 작가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많지 않고 그나마도 서울에 몰려 있는데 경기도에 ‘청년 작가 공방’이 생겨 더 반갑다”고 말했다. 함께 입주한 다른 청년 작가들과의 시너지도 기대했다.
“이런 제도가 많아지면 저처럼 고민하는 청년들한테 기회가 될 수 있잖아요. 사실 회사를 나와 혼자 뭔가 한다는 게 지금도 좀 막막하거든요. 그래도 그냥 행복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나씩 하고 있으니까요. 한국잡월드에서 고가의 장비도 사줬으니 이제 제가 잘해야죠.”
글·사진 원낙연 기자
정부, 청년 일경험 기업 지원 확대
정부가 더 많은 청년에게 일경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청년친화형 기업 ESG 지원사업’의 규모를 확대한다. 이 사업은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차원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직무훈련, 일경험, 현직자 멘토링, 창업·창직 지원 등 다양한 유형의 청년고용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 운영비 일부를 지원한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청년친화형 기업 ESG 지원사업 규모를 2022년보다 81억 원 늘린 251억 원으로 편성하고 24개 안팎의 프로그램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기업당 지원 한도도 기존 1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늘린다. 단, 기업이나 기관이 연합체를 구성한 경우 프로그램당 최대 50억 원까지 지원한다.
노동부는 “기업이 최근 화두인 ESG 경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진로를 찾거나 실무역량을 높이고 싶은 청년에게 필요한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ESG 경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의 실무역량 향상과 일경험 기회 확대 말고도 청년이 원하는 다양한 고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이면 기업은 유형이나 산업·직무 등에 제한 없이 기업 특색에 맞게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이현옥 노동부 청년고용정책관은 “기업이 강점을 활용해 청년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ESG 경영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며 “미래 인재 육성이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현장을 잘 아는 기업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